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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 파르시, 퀸으로 가는 길(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2-26 17:51
조회
1099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보헤미안 랩소디’에 매혹된 연말이다. 봐야지 봐야지 하던 영화를 지난 주말 봤다. 두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지루한 줄 몰랐다. 극장에 울려퍼지는 노래도 멋지지만 영화를 통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되새기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잔지바르”와 “파시”라는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기억도 안날만한 꽤나 생소한 이름이 등장한다. 영화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파키스탄 사람”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두 번 등장하는데 사실 프레디 머큐리의 일생을 따라가다보면 중측으로 얽혀있는 소수자의 삶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잔지바르는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곳이다. 탄자니아 동쪽 해안에 자리 잡은 섬으로 유서깊은 교역 중심지다. 서울보다 약 4배 크고 인구는 130만 명 가량으로 일찍이 이슬람 세계에 편입된 덕분에 지금도 인구 대다수는 무슬림이다. 16세기 포르투갈을 거쳐 17세기 말 오만 제국의 통치를 받으며 노예 중개무역지로 번영을 누렸다. 19세기 짧은 독립 뒤엔 영국 식민지가 됐다. 그렇다고 프레디 머큐리가 아프리카 사람인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의 뿌리는 영화에서 “파시”라고 표현한, ‘파르시’다.


 파르시는 페르시아, 즉 이란에서 살다가 8세기에 무슬림에 쫓겨 인도에 정착한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손들을 가리킨다. 조로아스터 혹은 자라투스투라가 창시했다는 이 종교는 천사와 악마, 최후 심판, 구세주, 천국과 지옥 등 현대 세계 주요 종교의 교리의 원형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산조 페리시아 때는 국교로서 지위를 누리기도 했다. 인도를 대표하는 재벌인 타타 그룹 설립자 가문 역시 파르시다.



사진 출처 - The Verge


 프레디 머큐리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였다.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는 인도 구자라트 주에 있는 불사르에서 태어나 잔지바르로 이주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8살 때 인도 뭄바이 인근에 있는 기숙학교에 다녔다. 이 시기 복싱 교내 챔피언도 했다.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 아버지는 잔지바르에서 맨손으로 쫓겨났다고 말하는데, 바로 영국에서 독립한 1964년 오랫동안 누적된 차별과 갈등이 폭발하면서 대규모 폭력사태가 발생했던 걸 말한다. 영국 총독부 하급 공무원으로 나름 유복했던 프레디 머큐리 가족은 영국으로 건너갔다.


 파르시는 인도에서 소수자로서 천년 넘게 살아오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하지만 파르시 어머니와 파르시 아버지한테서 난 자녀만 파르시로 인정하는 전통 때문에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프레디 머큐리 부모로선 아들이 파르시 여성과 결혼해 손주를 보는걸 원했겠지만 사실 영국에서 파르시 출신 아가씨를 만난다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파르시가 아닌 여성과 결혼하면 손주는 파르시 일원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게다가 게이라니.


 프레디 머큐리는 아프리카 사람도 아니고 인도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파르시도 스스로 거부했다. 그렇다고 온전히 영국 사람도 아니었다. 주변의 영국인이 보기엔 그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파키스탄 사람”일 뿐이었다. 거기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프레디 머큐리를 향한 비난과 조롱의 원천이 됐다. 불가능해 보이던 독일군 암호를 해독해 2차 세계대전에서 조국을 구한 영웅이었던 엘런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수모 끝에 자살한 게 보헤미안 랩소디를 발표하기 21년 전이었다.


 이게 과연 실화인가 의문이 들 정도로 인신공격과 모욕이 난무하는 기자회견 장면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퀸의 음악에 대한 질문은 없고 그저 끊임없이 프레디 머큐리의 사생활과 외모만 물고 늘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프레디 머큐리가 ‘영국인 이성애자’였어도 저랬을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프레디 머큐리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음악으로 모든 번뇌와 방황을 이겨내는 장면은 더욱더 감동스러울 수밖에 없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