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소개 > 인권연대란?

‘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만사형통 사찰쇼핑몰 (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0-24 15:57
조회
226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강화도 서쪽에 자리 잡은 석모도에는 보문사라는 절이 있다. 관음신앙으로 꽤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보문사 뒤편에는 큼지막한 마애석불이 있는데 낙조가 꽤나 멋지다는 얘길 들었다. 얼마 전 주말에 가족여행으로 석모도를 가는 길에 보문사에 가봤다. 거기서 내가 본 것은 관세음보살도 아니고 고즈넉한 천년사찰도 아니었다. 만사형통 건강장수를 파는 쇼핑몰이 있었을 뿐이다.


 석모도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비는 2,000원이다. 식당과 커피숍이 즐비한 ‘먹자골목’을 걸어서 올라가면 보문사 일주문이 나온다. 성인 2,000원. 돈 없으면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할 생각하면 안 된다. 거기까진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건 보문사 입장에서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문사에서 가장 눈을 어지럽게 하는건 돈을 내라고 권하는 다양한 이벤트다.


 기와불사, 연등불사는 기본이다. 각종 절기에 맞춰 제사를 지낸다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불탑을 1만개나 세운다며 돈 내고 복받으라고 권한다. 아예 대놓고 돈내면 자손대대로 거기다 다음 생에서도 복받는다고 써놨다. 보문사 뒷편으로 마애석불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 초입부터 끝까지 연등이 빽빽이 걸려있다. 연등에는 이름과 주소, 그리고 어떤 복을 원하는지 빼곡히 써 있다. 취업기원, 승진기원, 무병장수, 자손번성….


사진 출처 - travel-incheon.tistory.com


 보문사에서 봤던 광경과 매우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신도가 40만 명에 이른다는 도선사다.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도선사에는 멋들어진 소나무가 참 많다. 대웅전 뒤편으론 우뚝 솟은 북한산 정상이 한눈에 보이고 앞쪽으론 산줄기가 거칠것 없이 이어진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는 또 얼마나 멋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아름다운 광경을 압도해버리는 건 절 곳곳에 자리 잡은 복전함이다.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해서 하나씩 세어보다가 스무 개 언저리에서 포기했다. 각종 현수막 내용 역시 하나같이 불사, 불사, 불사... 신앙심이 얕은 중생 눈에는 그저 ‘돈 내세요 돈 내세요 돈 내세요’로 보일 뿐이다. 도선사에서 팔던 화분은 또 어떤가. 합격성취를 기원한다는 ‘합격화’가 1만 원,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행복화’가 5,000원이란다.


 생각해보면 산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절, 그리고 머리를 깎고 결혼을 하지 않는 승려란 꽤나 기존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 느낌을 풍기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럽 중세에서 등장한 수도원 운동도 그렇지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자녀가 없으니 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서유기에도 나오듯이 오공 오정 하는 식으로 돌림자를 쓰는 법명은 강력한 형제애와 소속감을 부여한다. 그 속에서 특정한 신을 섬기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고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는 지식인 혹은 전문가 집단이 성장했다.


 21세기 우리 눈에 비친 사찰은 어떤 모습일까. 내 느낌만 얘기한다면, 교회랑 별반 다르지 않다. 나 같은 장삼이사 눈에 불교는 한국 지식생태계와 괴리돼 있고 각종 재산분쟁과 파벌싸움만 도드라져 보인다. 딱 개신교가 비판받는 지점과 겹친다. 어떤 분들은 템플스테이를 예로 들며 반론을 제기할 듯하다. 여러 측면에서 어른 역할을 하는 스님들이 있다는 지적도 나올 것이다.


 맞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점 오해 없길 바란다. 하지만 일부 유치원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 유아교육 자체를 욕하는 게 아니듯, 불전함으로 도배된 사찰을 비판하는 게 불교 자체를 비판하는 건 아니다. 불교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간절히 바라는건 딱 하나. 한국 불교가 만사형통 사찰쇼핑몰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1000년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국 불교가 뭐가 아쉬워서 만사형통 십자가 쇼핑몰 흉내를 낸단 말인가. 어차피 우리나라 종교예산 십중팔구를 지원받는데다 문화재관람료란 이름으로 들어오는 자릿세 수입도 든든한데 말이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