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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빅히스토리’ 소묘(素描) (오인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9-05 15:36
조회
423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올여름 폭염 속에서 두 권의 역사책을 열렬히 읽었다.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 1976~)의 ⌈사피엔스-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류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조현욱 옮김, 김영사)과 ⌈호모 데우스-미래의 역사⌋(김명주 옮김, 김영사). 강의 교재로 적절한가를 살펴보려고 시작한 독서였지만 이내 저자의 박학다식과 도발적 문제제기와 참신한 해석에 매료되어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 허나 학식과 재주가 변변치 못해 실용적 탐색을 본격적 탐구로 매듭짓지는 못했다. 이열치열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책의 소묘라도 그리는 것은 두서없는 성긴 독후감으로 시론(時論)을 갈음하는 겸연쩍음보다 ‘저자와의 대화’에 직접 나서 보라고 전언하고 싶다는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두 책은 다루는 내용이 방대할 뿐더러 분량도 상당하다. 우리말 번역본을 기준으로 본문의 분량만 ⌈사피엔스⌋는 586쪽, ⌈호모 데우스⌋는 544쪽으로 총 1,100쪽이 넘는다. 이 방대한 분량 속에 하라리는 인류 종(호모 사피엔스)을 “우리”로 지칭하고,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라고 질문하고 문명사의 굵직한 흐름과 다양한 사례로 답을 제시한다. 인문학이 인간과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때, 하라리의 두 책은 인간은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문학 3문(3 Big Questions)”(경기대 사학과 김기봉 교수의 표현)에 ‘빅히스토리’적 접근을 보여주는 역사서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빅히스토리(Big History)’란 우주와 지구와 생명과 인간의 역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거대담론을 말한다. ‘빅히스토리’는 호주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D. Christian)이 1989년에 처음 사용한 용어이지만, 이 말이 학계를 넘어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11년 3월 그와 빌 게이츠가 빅히스토리 프로젝트를 공동 발기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빅히스토리는 삼라만상과 인간의 통합적 이해를 추구하기 때문에, 인류 종 전체의 역사 속에서 인간을 파악하고, 시간을 빅뱅 이후부터 인류세(anthropocene: 인간이 더 이상 자연조건의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지구의 자연조차 변화시키는 지질적 힘을 지니게 됨으로써 지구의 운명이 인류 종에게 달려있는 현재의 특이성을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시대개념)로 불리는 현재까지, 그리고 공간도 우주와 전 지구는 물론 가상현실로까지 확장하여 다룬다. 요컨대, 빅히스토리는 현대 과학지식에 기대어 인류사의 시간적, 공간적 축을 최대한 늘리고, 그 위에서 인간이 겪는 사건들을 통합적으로 조망하고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구축하려고 한다.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도 과학적 사실과 역사적 지식을 결합해서 빅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한꺼번에 아우르려는 빅히스토리의 대표적인, 어쩌면 가장 유명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두 책은 각각 그 판매량이 수백만 권에 이르는 세계적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하라리는 인간 역사의 시작에 앞서 135억 년 전 에너지와 물질의 생성, 그 후 30만년 쯤 지나서 원자와 분자의 형성, 그리고 35억 년 전 유기체(생명)의 출현을 명기함으로써 인간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물리, 화학, 생물을 모두 엮어서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천명한다. 그중에서도 사피엔스 역사 서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물이다. 하라리가 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하여 설명하려는 것은 사피엔스라는 종()의 성공이다. 즉 별 볼일 없었던 인간이라는 동물이 어떻게 지구 전체를 관장하는 생물학적 종이 되었는가의 문제다.


  하라리에게 역사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과정이다. 역사 이전에 있었던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 영역에 속한다. 인류의 자취가 생물학에서 역사로 전이된 계기는 호모 사피엔스가 주도한 세 개의 혁명이었다. 7만 년 전에 시작된 인지혁명이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면, 약 12,000년 전에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높였고, 약 500년 전에 일어난 과학혁명은 역사의 변곡점이 되었다. 과학혁명은 유신론적 종교를 초래한 농업혁명과 달리, 신을 인간으로 대체한 인본주의 종교를 낳았다. 인본주의는 신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지식이 권위의 원천이며 성경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경험이 인생의 의미를 이끌어낸다는 생각을 일반화했다.


  또한 과학혁명은 250년 전의 산업혁명, 50년 전의 정보혁명, 그리고 오늘날 생명공학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인간은 급기야 죽음을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로 간주하고 영원한 삶을 가능하게 하려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하라리는 오늘날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물공학 등을 이용해서 사피엔스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를 지적설계의 공정으로 본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 한계를 초월하는 중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존재인 호모 사피엔스’가 질병과 노화에 시달리지 않는 ‘생명공학적 호모 데우스(신적 존재)’로 대체된다면, 생명이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공학적 호모 데우스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라리는 이에 대해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미숙하다. 우리가 전보다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답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그는 지금 우리가 고뇌해야 할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 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는 없으므로!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