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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문재인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2:02
조회
570

- 늑대의 시대 양으로 사는 길 보여주길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하필 이 원고 마감일이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일로 예정돼 있었다.


대세가 아니라 결과가 이미 결정 난 판이라지만, 주위에서 간헐적으로 나오는 ‘혹시나 하는’ 견제나 재수 없는 ‘꿈’ 얘기 때문에….


마감 날짜까지 늦춰가며 원고를 잡아두고 있었던 것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원고는 미리 써놓기로 했다.


알려진 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이 ‘독실하다’는 말을 께름칙하게 만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서석구 변호사 같은 이들이 있어 평소 이 말은 잘 쓰지 않는 편이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기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독실한 신자 축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유력한 후보시절 사전 취재를 위해 몇 차례 그의 근거지(?)를 찾았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신자나 사목자의 활동 근거지가 주로 당사자가 교적(敎籍)을 두고 있는 본당이 된다. 따라서 당시 문 후보의 근거지는 그가 교적을 둔 천주교부산교구 양산 덕계본당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취재에 돌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덕계본당에서는 별로 건질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예의 ‘색깔론’과 ‘지역감정’이 본당 신자들마저 갈라놓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했지만 쓸 만한 게 없었다.


마음먹고 찾았는데 ‘건질 게 없다니….’ 난감한 상황에 생각이 미친 게 문 후보의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오히려 메리트가 있다 싶었다. 급하게 방향을 틀어 그의 어머니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문 후보의 어머니는 그야말로 꼭꼭 숨어있었다. 어렵사리 그가 다닌다는 성당을 찾았지만 연락처는 고사하고 주소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본당 교우들한테 외부 사람에게는 절대로 어떤 얘기도 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놓은 터였다. 할 수 없이 속칭 ‘뻗치기(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전통적인 취재 기법)’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몇 번이고 그물망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몇 차례 허탕을 치고 허탈해 하고 있는 찰나에 우연히 성당에서 만나게 된 사람이 김 모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당시 문 후보를 그냥 ‘재인이’라고 불렀다. 솔직히 처음엔 허세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에겐 정말 문 후보가 그냥 ‘재인이’였다. 지금의 문 대통령과 같은 초등학교와 같은 성당을 다닌 오랜 ‘친구’라는 김 회장 입에서 나온 대통령에 대한 기억들은 의외였다. 문 대통령이 살던 집, 그의 부모님과 가족들, 학교생활 등에 관한 김 회장의 기억은 어떻게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거의 날짜 단위까지 사실에 근접해 있었다.


김 회장의 호의로 어렵사리 문 대통령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갔다. 결국 연로한 그의 어머니는 못 만나고 그를 모시고 사는 여동생을 근근이 만날 수 있었다. 첫 대면에 문 대통령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도 어머니의 당부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다시 김 회장의 호의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성당 마당에서 여러 친구들 속 문 대통령과 뛰놀던 일, 성당 수녀님들의 사랑을 받던 모습, 가난했던 집안 내력, 초등학교 5~6학년 시절 미사 때 함께 복사(服事:미사를 거행할 때 주례 사제를 도와 전례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봉사자를 이르는 복사는 보통 신앙이 독실한 아이들 중에서 뽑힌다.)를 서던 기억들….


20170510web01.jpg사진 출처 - 문재인 대통령 가족 제공


꼬박 하루를 함께 동행한 김 회장은 그 또래가 지닌 평균적인 모습을 뛰어넘는 모습으로 그간 내가 알고 있던 문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재인이한테는 뭐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게 없었어요. 가(걔) 어머니 신앙과 정성이 그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요.”


김 회장을 비롯한 성당 신자들에게 각인돼 있는 문 대통령 어머니 모습은 충실하고 겸손한 신앙인 그 자체였다.


‘얌전해서 도드라지는 게 없는 친구’라는 평 다른 쪽에는 ‘어머니를 닮은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거였다.


“재인이한테는 하느님, 하느님의 정의가 숨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니 이 시대가 부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김 회장은 이 시대의 징표를 ‘정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갈 사람으로 오랜 친구 ‘재인이’를 꼽았다.


“내가 알아 온 재인이가 우리 모두의 재인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지는 모르겠지만, 지(자기) 잇속 차리는 일만 하지는 않을 거구만…. 그게 재인이 모습입니다.”


김 회장이 오랫동안 품어 온 ‘나의 문재인’이 확장되고 보편화될 때 세상에는 좀 더 희망이 들어차지 않을까.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5월 10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