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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질문하는 권력, 질문하는 의무 (강국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55
조회
516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기자를 하면 뭐가 좋을까.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온갖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거리낌 없이 질문할 수 있다. 그래서 기자들은 초짜일 때부터 어디가든 기죽지 말라는 말을 선배들한테 자주 듣는다. 기가 죽어 움츠러들면 힘있는 사람, 돈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게 된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질문이 나올 수가 없다.


이런 특징은 세상 사람들에게 ‘기자란 족속들은 어딘가 건방지다’는 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다소 선입견이 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보고 듣는 것도 많으니 할 말도 많고, 불편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던지는 버릇은 충분히 예의 없게 비칠 수 있다.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해서 기자들을 많이 접해본 한 지인은 “기자들은 수백명 사이에 가만히 섞여 있어도 금방 티가 난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기자들은 어딜 가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어서”였다.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다. 어찌 보면 꽤나 무서운 권력이다. 흔히 하는 얘기로 언론은 국민들을 대신해 질문한다. 다시 말해,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질문할 권리를 위임받았다. 이는 곧 언론에게는 질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최근 특검에서 말마다 언론 브리핑을 하면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이명박근혜 9년을 거치며 나라꼴이 망가진 게 어디 한두 개이겠느냐마는 언론의 '금도'가 무너진 것은 무엇보다 뼈아프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질문할 권리'를 포기하고 '질문할 의무'를 외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는 재임 4년 동안 기자회견을 한 게 다섯 손가락도 안 되는데 그나마 미리 정해놓은 각본에 따라 묻고 답했다. 이건 기자회견이 아니라 그저 '쇼'일 뿐이다. 그 쇼에 기자들 스스로 동참했다는 게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쪽팔릴 따름이다.


00503285_20161129.JPG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다. 국민대통합을 위해 이명박근혜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발본색원해서 응징하는 미래지향적인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질문할 권리와 질문할 의무를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각오를 가장 먼저 새겨야 할 사람은 물론 필자라는 점을 밝힌다.)


이제 본격적인 대통령선거가 시작됐다. 각종 토론회가 열린다. 많은 이들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기자라는 명패를 달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온갖 질문을 던진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문하는 사람이 아무거나 막 던져도 된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내가 다 부끄러운 질문이 쏟아진다.


관훈클럽에서 열린 안희정 초청 토론회에서 어떤 논설위원이 안희정에게 ‘대통령 되면 미국부터 갈거냐 중국부터 갈거냐’는 질문을 했다는 얘길 들었다. 하다못해 우리집 꼬마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 질문에 대처하는 법을 터득했다. 논설위원 정도 되면 언론사 경력이 20년 안팎은 될 텐데 그런 분이 안희정을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번뇌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대통령 후보 문재인은 ‘미국에게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얘길 했다. 한미동맹 훼손 우려라느니, 안보관이 의심스럽다느니 하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은 부모님이 시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는 게 효자라고 생각하는걸까? 친구 사이라면 새벽 두시에 술먹으러 고속버스 타고 오라고 해도 가야 한다는 건가? 미국에게 NO라고 했다가 큰일나는 사이라면 그게 갑을관계라는 생각이 안드는게 더 신기하다.


최근 사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미국과 중국이 얽혀 있는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이럴 때 ‘중국은 내정간섭을 중단하라’느니 ‘중국의 협박에 위축되면 안된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이런 주장이 언론에서 그대로 확대 재생산된다. 필자가 보기엔 언론이 질문을 하지 않거나 틀린 질문만 던지고 있다. 왜 지금 사드를 배치해야 하는지 질문은 없고 “북핵이 없으면 사드도 없다”며 미국이 들려주는 얘기만 진실이라고 단정해버린다. 왜 북한보다도 중국이 더 반발하는지 그 까닭을 먼저 살펴보고, 그 이유가 타당한지 검토해보는 절차는 생략한 채 “치졸한 보복”이라고 단정해버린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찾은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 없잖아.” 이우진은 훌륭한 언론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언론이라는 걸 안다. 질문 잘하는 것이야말로 능력이요 실력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의무다. 달을 가리킨다고 달만 쳐다보는 바보는 되지 말자.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7년 3월 1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