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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선 불출마 선언을 권하는 이유 (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46
조회
621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얼마 전 대학 같은 과 동기들과 차기 대선을 주제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나를 포함 4명밖에 안 되니까 즉석 설문조사를 했다. 2명이 안희정 지지자였고, 다른 2명은 각각 박원순과 이재명을 지지한다고 했다. 유유상종일 것이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대학 1학년 때 처음 만난 뒤 거의 28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학생운동을 했던 친구들도 아니었다. 특히 외국계 기업 임원인 한 친구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유명 인사들과 교유관계가 꽤 두터운 데도 이재명을 지지한다고 해서 의외였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여권 주자 이름은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왜 문재인 이름이 나오지 않은 걸까. 조중동이 벌써 대통령 된 것처럼 행세하지 말라고 견제구를 날리고 있는 유력 주자인데.


구중궁궐의 엽기적인 뉴스가 줄을 이을 때만 해도 문재인은 지지율 1위였다. 하지만 여론조사 그래프를 보면 최고조일 때조차 문재인 지지율이 20~25% 사이 박스권에 갇힌 형국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반기문이 대선 출마를 사실상 선언하자마자 바로 뒤집혀 버릴 만큼 허약한 지지율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노무현의 친구라는 프리미엄과 청와대 국정 경험, 학생운동과 인권 변호사라는 감동적인 경력, 군 미필자들이 득실거리는 정치권에서 특전사 출신이라는 비교우위와 믿음직한 외모라는 상품성까지 갖췄으며, 각종 미담의 주인공인 문재인의 인기는 왜 오르지 않는 걸까. 상당수 야당 지지자들이 문재인의 비밀을 알아버린 게 아닐까.


문재인에 대한 내 결론은 ‘훌륭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훌륭한 정치인은 아니다’이다. 정치인 문재인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지도자는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다. 김대중은 지도자의 덕목을 국민보다 반 발 앞서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의 어법을 빌리면 노무현은 국민보다 한 발 앞서간 사람이다. 방향은 대체로 옳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데 문재인은 국민보다 한 발 뒤에 서 있는 느낌이다. 늘 주저하며 눈치를 본다. 특유의 우유부단함이 이번 박근혜 퇴진 촛불 국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반 발도 아니고 한 발 뒤처져 있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다. 앞장서서 퇴진과 탄핵을 외친 이재명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중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정치인에게 열광한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눈치 보는 정치인은 인기가 없다. 안철수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도 이와 같다. 문재인이 종종 과격해질 때도 있다. 이럴 땐 그가 완급조절이 잘 안되는, 말을 정제해서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인데, 말을 잘 못하니 어려운 일이 많다. (가끔 답답했지만) 무릎을 치게 하는 혜안을 보여줬던 김대중이나 (사고도 많이 쳤지만) 속 시원하게 상식을 설파했던 노무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사람들이 지금 머리가 아픈 것은 바로 문재인이 여전히 야권 지지율 1위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1위의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됐다. 박근혜의 살신성인으로 어느 때보다도 야권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졌는데도 그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선 투표를 도입한다고 해결될 성질은 아닌 것 같다.


20161228web01.jpg사진 출처 - 한겨레


야권 인사들은 반기문을 ‘기름장어’라고 놀리지만 나는 그가 간단치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때로 위대한 능력으로 스스로를 감동하게 하지만, 또한 그에 못지않게 속물근성이 강하다. 위인전까지 나와 있는 유명인사의 선거 경쟁력은 만만히 볼 게 아니다. 12월27일 창당을 선언한 개혁보수신당이 반기문을 영입해서 유승민과 경선을 치를 경우 그 승자의 본선 경쟁력은 막강할 것이다. 콘텐츠가 부족한 반기문으로서는 일찍 열린 대선판이 반가울 것이다. 검증 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이쪽으로 붙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 승자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설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잘 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그의 발언을 보면 박근혜의 안티 테제로서 자신을 세우려고 할 뿐, 이 나라를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대한 방향은 제시하지 않는다. 특히 재벌 개혁이나 서민 경제 등 국민들의 관심이 많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메시지가 잘 들리지 않는다. 2012년보다 조금이라도 진전된 내용이 없는 것 같다. 좋게 보려고 해도 노무현 정부 때 이미 확인됐듯이 친재벌적 성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 앞선다. 박근혜 옆에 문고리 삼인방이 있었다면 문재인 옆엔 삼철이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른바 친문세력의 핵심인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문재인이 벌써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재명이 반문연대를 제안했다가 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모양이다. 안희정조차 이재명을 비판했다. 나는 안희정의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내부 경쟁이라고 해도 다른 점을 드러내고 토론하는 게 정치다. 그 과정에서 여론의 지지가 확인되는 것이다. 같은 편이라고 비판하지 말자는 것은 새누리당식 전체주의다.


새누리당이 쪼개지면서 정치적 역동성이 여당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선거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쪽이 우세하다. 여론이 관심을 가지고 따라가기 때문이다. 부자 몸조심하다가 막판에 되치기당한 힐러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다들 아는 얘기지만 노무현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문재인은 정치에 별 뜻이 없었다. 문재인 스스로도 자신이 정치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대선에 나서는 과정도 그렇다. 권력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대선에 뛰어들었다기보다는 노무현 지지 세력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떠밀려 나왔다. 그런데 대선에서 떨어지고 나서부터 사람이 좀 바뀌기 시작한 것 같다. 권력의지가 강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을 위한 권력의지인지 잘 모르겠다.


누가 봐도 지금은 야권이 유리한 최고의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기각하지 않는 한) 앞으로 야권은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재인 지지율 역시 내려갈 일만 남았다고 봐야 한다. 이럴 때 ‘훌륭한 사람’ 문재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권교체를 위한 불쏘시개가 되라고 하면 무리한 주장일까. 지난 총선 당시 밝힌 정계 은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승적인 관점에서 2선 후퇴를 함으로써 가능성을 품고 있는 다른 후보들에게 양보하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도 성공한 대통령을 한번 가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2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