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 이야기 (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43
조회
418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의 불찰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깊이 사죄드립니다.
이번 일로 마음 아파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모습을 뵈면서 저 자신 백 번이라도 사과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그 큰 실망과 분노를 다 풀어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제 가슴이 더욱 무너져 내립니다.

국민 여러분,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안에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동안 저는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이 자리에서 저의 결심을 밝히고자 합니다.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말씀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루 속히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정치권에서도 지혜를 모아 주실 것을 호소 드립니다.“

PYH2016112915870001301_P2.jpg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어린 시절, 제가 살았던 도시 변두리 동네에 제정신이 아닌 분이 살았습니다. 저희 집에서 두 집 건너, 근호네 엄마입니다. 근호 엄마는 비가 오는 날이면 부엌칼을 들고 나와 온 동네의 빨랫줄을 끊고 다녔습니다. 평소에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근호 엄마는 날이 궂으면 그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라고 글을 시작해놓고 오래전 기억을 더듬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를 ‘경청’했습니다.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아마 근호 엄마 이야기로 시작해서 버스나 기차 종점에는 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꼭 한두 명쯤 있는 걸까 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마땅히 할 말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기가 차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가 막혀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뜬금없이 근라임 담화문을 옮겨놓고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말인지 방귀인지도 구분이 안 됩니다.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면서 제정신이 아닌 저를 용서해주실 것을 호소 드립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30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