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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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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날 이야기 (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14
조회
429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설날이었습니다.


차례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시쳇말로 ‘노빠’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형이 안모 철수 씨 욕을 시작했습니다. 음복을 조금 과하게 할 때부터 약간 불안했던 저는 속으로 ‘이런... 결국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안 모 그 머시기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둥, 깜냥도 안 되는 인간이 정치판에 들어와서는 결국 새누리당에 좋은 일만 시킨다는 둥... 형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가족들이 모처럼 다 모여 있는 설날 아침부터 굳이 그런 얘기를 꺼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별 수가 없습니다. 입을 다물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척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제풀에 잠잠해질 테니까요.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 장남으로서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요? 어쩌면 형은 조카들에게 무언가 가르치고 싶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정의 세력과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악의 세력들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자꾸 반복해서 하는 걸 보면 이제 이야기를 그칠 만도 한데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지 형은 느닷없이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엄니!”


저희 어머니는 공화당 시절부터 박정희를 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분입니다. 지난 대선 때 가족 중 유일하게, 당연히 박근혜에게 한 표를 던졌던 어머니에게는 형이 하는 말이 좋게 들릴 리 없었겠지요. ‘저 놈이 또 저런다’는 표정으로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어머니에게 형이 물었습니다.


“엄니는 이번에도 박근혜 당 찍을 거지?”


일찍이 시장통에서 잔뼈가 굵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작을 리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버럭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그래, 왜? 박근혜가 너한테 돈을 달래, 뭘 달래?”


형은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씨익 웃으면서 저와 조카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 거예요.”
“꼴이 뭐 어때서? 니 놈이나 정신 차려!”


왜 이렇게 애국자들이 많은 걸까요. 나라 꼴 걱정하다가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박근혜가 얼마나 죽일 X인지에 대해 형이 한 마디 할 때마다 어머니는 빨갱이, 빨갱이 때문이라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두 사람은 점점 어린애가 되어 다투었습니다. 지난 선거 무렵과 거의 같은, 지겨운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장남은 전생에 부부 사이여서 그렇게 애틋하다고 하던데 우리 집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l_2015102801003887100348341.jpg사진 출처 - 경향신문


“시끄러워!”


형이 나름 조리 있게 설명을 하려고 말수가 많아질수록 어머니의 대사는 단순 명료했고 목소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못 꺾은 어머니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가 말다툼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너는 니 좋은 놈 찍어, 나도 내 좋은 놈 찍을게! 그럼 됐지?”


백 번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때다 싶어 제가 나섰습니다.


“자, 자! 이제 그만하면 됐어요. 애들도 있는데....”


저는 형의 손을 끌고 작은방으로 갔습니다. 형은 답답함과 아쉬움이 반반인 얼굴이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제게 하소연하듯이 말했습니다.


“너는 내 말 이해하지?”
“아무렴 이해하지... 그래도 어머니한테 그러지 마....”
“아, 진짜... 우리나라는 노인네들이 문제야...”


형의 나라 걱정은 생각보다 깊어 보였습니다. 그만큼 어머니의 나라 걱정도 대단한 것이었겠지요. 두 달 뒤, 4월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이런 애국적 희극이 또 벌어질 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지난 선거 무렵 몇몇 지인들과의 술자리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 재기발랄한 한 분이 우스갯소리로 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때 들은 이야기를 형에게 했습니다.


“그렇게 걱정이면, 선거일에 어머니를 어디 온천이라도 보내드릴까?”


형이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거 되게 웃긴다.”


형은 실없지만 재미있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설날은 지나갔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누가 무슨 당을 탈당하느니 마느니 하고, 테러방지법과 필리버스터니 하면서 시끄러워질 때였습니다. 형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야, 그때 어머니 온천 보내드리자고 한 거...”
“하하... 그거 왜?”
“진짜로 보내드릴까?”


지난 설날 때와는 달리 형은 웃지 않았습니다. 심각하고 진지한 것 같았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3월 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