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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하는 순간 합의되었다 :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 (이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10
조회
542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 철학자 칼 슈미트는 “주권자는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규정한 바 있다. 주권자, 다시 말해 권력자는 “긴급 상황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평정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결정한다.” 권력자는 어떤 상태를 예외 상태로 규정하고 그 상태 ‘밖’에서 그 예외 상태를 판단하고 평정하려 할 뿐이다. 그래서 가령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등 있어서는 안 될 예외적인 사건들이 벌어져도 권력자는 그 사건 ‘밖’으로 물러나 있다. 설령 일말의 도덕적 책임은 느낄 수 있을지언정, 법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처럼 예외를 몰아붙여 일상으로 여기게 하기도 한다.


2015년 12월 29일,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합의문의 관건은 “이번 발표를 통해 이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는 대단히 비약적인 문장에 있다. 수십 년 이상 거의 전 국민적 관심사로 작용해오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마치 특정인이 일거에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하고 예외적인 일인 냥 단번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합의문이 나오게 된 ‘배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발표한 경위서에 따르면, “지난 11.2 한·일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님과 아베 총리께서 ‘금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라는 전환점에 해당되는 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조기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자’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주셔서” 양국 당국자 간 협의를 통해 이런 합의문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요미우리신문」에 의하면, 아베 총리가 기시다 외무상에게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언이 들어가지 않으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정치적 책임자들이 결단하자 단박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 되었다고 말하는 셈이다. “체포되는 순간 정확히 판결이 내려졌다”는 법학자 살바토레 사타의 말과 거의 같은 구조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사건의 당사자가 완전히 빠져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당사자는 직접 피해자들이고, 관계자들이며, 이 문제 때문에 마음 아파하던 시민이기도 하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여론 수렴 과정이나 국회에서의 논의도 없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합의문이 덩그러니 나오고 말았다. ‘합의’(合意)의 국어사전적 의미가 “사건이나 사고의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와 그 사건이나 사고에, 또는 둘 이상의 당사자가 사건이나 사고에 대하여 의사가 합치하다”라면, 당사자가 빠진 합의는 분명히 합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박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언제 위안부 사건의 직접 당사자였던 적이 있던가.


l_2015122901004117000355632.jpg지난 29일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한일 회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신대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왜 피해자들과 상의없이 협상을 했냐”며 항의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게다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라면서도 ‘법적 책임’ 문제는 거론도 하지 않았다.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는 비도덕적인 언사만 포장지처럼 들어있을 뿐이다. 아베 총리가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문구는 들어있지만, 그 마음이 진심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합의문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 아베 총리의 부인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이렇게 사건의 당사자도 배제되었고, 법적 배상도 빠져 있고, 진정성 있는 사과도 없는데, 자랑스럽게 합의문이라고 내놓는 일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진심이 아니어도 상관없고, 모순되어도 상관없고,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는 비도덕적 언사만으로 역사적 사건을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해내는 능력은 기묘하기까지 하다.


이런 일은 극복될 수 있을까. 당사자의 일이 당사자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모순은 전복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권력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권력자는 법 ‘밖’에서 긴급 상태를 결정하는 이들로 머물 뿐이다. 모순을 극복해야 할 주체는 모순을 모순으로 느끼는 당사자들뿐이다. 암담하기 짝이 없어도 예외가 상시가 된지 오래인 모순적 상황을 아래로부터 꿰뚫어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도리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2월 3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