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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삶이란 (김영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03
조회
443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4년 전부터 책을 가까이 하는 교사들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교사와 보수라고 생각하는 교사가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과 함께 교사 개인적인 일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른 가치를 지닌 관계로 때때로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얼마 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자칭 보수라는 40대 교사가 “난 역사 교사지만, 교과서 문제가 이렇게 중요한가요? 수업하는 학생들은 역사에 관심이 없어요, 고대사는 정확한 사실이 있어서 자신 있게 가르치지만 여러 쟁점이 있는 근현대사는 사건만 나열하는 정도로 수업해요, 저는 보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사실만 교육하며 제가 보수임을 나타내지 않아요. 중·고등 학생 때 배운 것보다는 주변의 환경과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 계시는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배운 역사 교육이 삶에 영향을 미쳤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이 교사의 질문과 생각에 세상에 대한 공부를 중단한 채 한 시점에 머물러 자만심으로 가득차 공격적이던 오래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대부분이 50대인 교사들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두 역사교육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혼란스런 마음이 생각나게 되었다.


l_2015103001004249500379181.jpg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지난 10월 29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시국선언에는 일반 교사들도 참여해 2만1379명이 실명으로 서명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국정역사교과서로 배우고 그것으로 학생들에게 교육하다 10여 년 전부터 검인정교과서로 가르치는 세대로서, 그 시대 교육(국정교과서)으로 대학시절에 접한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을 알고서 복잡하고 당황스럽던 감정을 이야기 했고, 다른 역사교사는 검인정교과서로 된 후에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기보다는 현재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관심과 입장에 따라 역사적 사실에 많은 질문이 제기되고 토론이 되는 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암기위주로 가르치는 수업이 없어지면서 교사들은 더욱 많은 공부를 하고 자료를 준비하고 노력해서 학생들이 답을 찾는 수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질문을 던진 교사는 당황스러워 하며 자신은 보수적인 생각을 가졌지만 객관적으로 역사를 가르치려고 노력한다며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끝냈다. 우리가 보아온 이 교사는 수업도 열심히 하고 담임의 역할도 최선을 다한 착한 삶이었지만 학생들 모습에 자신의 생각으로 단언을 하고 세상을 알기 위한 노력보다는 본인이 가장 상식적이고 중립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교사는 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학생과 학교를 알아야 하며, 좋은 삶을 가르치는 직업으로써 절대 중립적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반성이 되었다. 교사로 보낸 많은 시간들을 돌이켜 보니 착한 삶을 사는 것이 좋은 교사인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학생들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착한 삶의 모습으로 보일까 두려워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서 좋은 삶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 것을 다짐해 본다.



좋은 삶이란

좋은 삶은, 삶의 주인의 오래된 습관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좋은 삶은 착한 삶과 동일하지 않다.
착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착한 바보’는
타인을 공격하지 않고 모독하지 않는 소박한 방어의 삶을 사는 것이지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교활해서는 안 되지만 영리할 필요는 있다.
영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만 우리는 좋은 삶을 지키기 위한 방어술을,
그리고 좋은 삶을 훼방 놓는 악한 의지의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는 공격술을
모두 터득할 수 있다.
좋은 삶은 그래서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요구한다.
좋은 삶은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능숙히 사용해서
세상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다.
좋은 삶을 기대하는 유토피아적 희망은
삶의 무시무시한 리얼리티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먹고 자란다.

(사회학자 노명우의 책 “세상물정의 사회학”중)

김영미 위원은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5년 11월 4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