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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09-19 12:09
조회
1594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 자주 하셨던 강연의 주제는 ‘공부란 무엇인가’였다. 선생의 마지막 강의를 엮은 책 <담론>의 주제도 결국 그것이다. <담론>에는 ‘가장 먼 여행’이라는 문구가 여러 번 등장한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다. 먼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은 자신이 갖고 있던 인식의 완고한 틀을 깨고 인식을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영복 선생은 징역 생활 초기에 다른 재소자들을 객관적인 인식 대상으로 보는 창백한 지식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술회한다.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그저 나와 다른 타자로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년의 징역 생활을 보낸 후에야, 재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듣고 자신이 가진 지식인적 관념성을 성찰하면서, 즉 공부하면서, 차츰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은 궤적을 살았겠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이렇게 타자화의 시선에서 공존과 관용의 시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다. 이것이 톨레랑스의 지점이며 근대사회가 도달한 최고의 덕목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생각하는 일이며 진리와 주체의 재구성이다.



사진 출처 - 사단법인 더불어숲


 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또 다른 먼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다. 공존과 관용을 뛰어넘는 소통과 변화의 길이며 탈주와 유목주의의 길이다. 공존과 관용, 톨레랑스는 자기 자신이 변화하지 않은 채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다. 여전히 존재론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근대를 지배하는 존재론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 관계론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때 변화는 이루어진다. 탈주와 변화를 통해 나 자신을 개혁하고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연대할 수 있을 때, 그렇게 사회를 변화시킬 때, 비로소 우리의 여행은 완수된다. 그리고 그것이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실천이며 공부란 바로 그런 실천의 과정 자체다. 이와 같은 주체의 변화는 개인의 차원에서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재적 가능성으로 존재하다 삶의 국면 국면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끝없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한 사고나 경험 틀에 갇히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우리는 생각의 틀이 과거 어느 상태에 고착된 채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아집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공부하지 않고 특정한 사고의 틀에 그대로 안주한 채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교회 세습을 고난의 세습이라 강변하며 비판자들을 마귀로 모는 목사들이나 퀴어문화축제를 온갖 폭력으로 방해하는 사람들,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를 유포시키고 또 그것들을 정말로 믿어버리는 사람들. 낡은 사고의 덫에 갇힌 채 태극기를 흔들어대며 증오의 언사를 쏟아내는 사람들... 모두 그렇게 굳어버린 사람들이다. ‘공부는 생명의 존재 방식’이라는 신영복 선생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살아 있되 온전히 살아 있지 못한 생명이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공부하고 변화해야 한다.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의 여행은 가장 먼 여행이며 결코 끝나지 않는 여행인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