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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51
조회
1769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이 아닐까!”


한동안 세간에 화제를 몰고 다닌 TV 드라마 〈도깨비〉 때문에 유명세를 탄 말이다.


꼭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무엇일까 하는 물음은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음직한 원초적인 의문이 아닐까.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가 분한 도깨비나 이동욱이 분한 저승사자는 ‘망각’을 신이 자신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로 여긴다. 그럴 만도 하다. 적게는 300년에서 많게는 900년도 넘게, 칼에 찔린 듯 한 고통에 찬 삶을 견뎌 온 이에게는 잠시나마 고통을 잊는다는 게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축복일 수 있다. 극한의 고통을 경험해본 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법하다.


현실에서도 많은 이들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길로 망각을 선택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망각이 쉬 이뤄지지 않을 때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으로 고통의 기억을 대체하기도 한다. 그것이 쉽지 않을 때 극단적인 방법으로 마약류를 통해 고통의 기억을 잠시나마 잊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망각의 기제가 사회에 투사될 때 대부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망각의 반대인 ‘기억’을 전제로 생존해 온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에게 기억이, 그리고 그 기억의 전달이 없었다면 지구상에서 수없이 명멸해간 다른 존재들처럼 어느 한 순간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존재도 자신들이 살던 동굴에 암벽화를 남긴 기억의 행위로 4만 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까지 살아남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존재임에도, 망각의 기제를 사회에, 공동체에 강요하는 무리가 있다. 이들은 “그만 잊으라”고, “망각의 강 저편으로 떠나보내라”고 자꾸 주문을 건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도,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도, 용산 참사도, 쌍용차 노동자의 눈물도, 4대강의 신음도, 제주 강정의 통곡도, 미순이 효선이의 한도…. 모두 잊으라고만 한다.


PYH2014071202080001300_P2.jpg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면서 자신들은 반대편에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박정희기념사업회 등 기억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고 난리다. 이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것, 세상에 퍼뜨리고자 하는 것은 결국 ‘가짜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기억’은 원래 실체가 없는 기억이다. 이미 있던 정보가 왜곡되어 나타난 환상 같은 것도 아니고 아예 뿌리가 없는 기억이다. 꿈이나 특정 경로를 통해 접한 정보를 실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착각하거나 실제 겪었던 일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자신이 한 거짓말마저 실제라고 믿어 버리는 ‘리플리 증후군’도 이 ‘가짜기억 증후군’의 일종이다.


‘가짜 기억’을 만들어내는 무리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 이유를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지며 강고하게 구축된 ‘가짜 기억’의 성(城)을 삶의 뿌리로, 존재의 기반으로 여기는 ‘박사모’ 같은 이들의 존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가짜 기억’의 성에 들어가려 몸부림치더니, 어느 순간 그 성을 만드는 일에 부역하다 거짓의 성에 갇혀버려 이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그들 존재 자체가 거짓으로 만들어진 성의 밑돌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다시 물음을 던져본다, 나 자신에게, 우리에게.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감히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의 기억, 연대의 기억, 투쟁의 기억, 나눔의 기억, 하나됨의 기억…’
기억할 때, 기억을 공유하는 우리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이 글은 2017년 2월 1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