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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33
조회
483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른바 ‘먹방’ ‘쿡방’이 여전히 인기다. 이제 어지간히 물릴 때도 됐다 싶은데 휴일 TV 리모콘을 돌리다 보면 언제든 최소 대여섯 개 채널에서 뭔가를 먹거나 요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먹방도 그 사이 참 다양하게 진화했다.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이나 전문 요리사가 요리 시범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처럼 오래된 먹방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있고, 몇몇 연예인들이 외딴 곳에 모여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포맷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아빠, 어디가?> <정글의 법칙> <1박 2일> <나 혼자 산다> 등 먹방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대부분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뭔가를 먹는 장면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점잖게 테이블에 둘러앉아 음식에 관해 품평을 나누는 프로그램도 있고 남의 냉장고를 통째로 들고 와 그 안에 든 재료로 정해진 시간 내에 음식을 만들어 겨루는 프로그램도 있다. 최근에는 먹는 모습을 그냥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다. 먹성 좋아 보이는 개그맨들이 식당에 모여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있고, 젊고 예쁜 여자 아이돌 멤버가 음식 먹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일부 인터넷 방송 채널 가운데는 젊은 여성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어대는 장면을 하염없이 보여주는 방송도 있다. 놀랍게도 이런 방송이 적지 않은 인기를 모으고 있고 방송 출연자가 단지 먹어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큰 돈을 버는 사례도 적지 않단다.


먹방의 인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해석이 나온 바 있다. 하나는 가족의 해체와 1인 가족의 증대가 먹방의 인기를 가속화한다는 설명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외로움을 가상으로나마 덜고 싶은 욕망이 먹방의 인기로 나타난다는 해석이다. 또 하나의 해석은 다이어트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압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에서 일종의 전복적 즐거움을 얻는다는 해석이다. 사실 최근의 먹방은 다이어트를 통해 체형을 가꾸고 소식으로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배적 담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일면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1472803757_1154739.jpg사진 출처 - 티브이데일리


대중문화는 기본적으로 대중의 욕구와 욕망을 드러내고 투사하는 대상이다. 영화를 보고 TV를 보면서 얻는 대중의 쾌락은 결국 그들이 가진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는 데서 오는 쾌락이다. 먹는 것에 대한 욕망과 섹스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적 욕구에 해당한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먹방은 포르노그래피와 그리 다르지 않다. 먹방을 두고 음식 포르노라는 비판이 나온 건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다.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식욕과 성욕 등 가장 기본이 되는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과 애정에 대한 욕구, 명예와 권력의 욕구, 그리고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는 자기실현의 욕구로 단계화되어 있고, 아래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보다 상위 욕구에 대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러니까 일단 배가 부르고 안전해야 사랑도 꿈꾸고 명예도, 자기 실현도 욕망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매슬로우의 이론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대중문화에 대한 대중의 취향을 설명하는 데는 일정하게 유의미한 점이 있다. 다수 대중의 인기를 얻는 대중문화일수록 대체로 낮은 단계의 기본적인 욕망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식욕과 성욕, 안전, 소속감과 애정 같은 욕구 말이다. 헐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체로 가장 기본적인, 따라서 보편적인 욕구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최근 먹방의 인기는 지금 대중의 욕구가 가장 기본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에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어떤 사회적 가치나 이념, 이상의 실현, 아름다움의 추구, 이런 것들은 끼어들 여지도 없이 당장의 생존과 최소한의 안전과 내 식구들의 먹을 거리가 더 중요한 시대를 드러내는 징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회가 보수화되고 역사 퇴행의 조짐이 완연하고 최소한의 안전과 복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강화되는 시점에 먹방이 유행하고 있다는 건 참 시사적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9월 7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