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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계명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22
조회
491

- 부끄러움 모르는 사회 : 거짓말과 수치심에 대한 단상


서상덕/ 가톨릭신문 기자


꼭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십계명’이란 게 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세상, 특히 오늘날 우리나라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십계명 가운데 유독 자주 떠올리게 되는 계명이 있다. 바로 여덟 번째 계명인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다.


거짓이 난무하는 오늘날 거짓은 일상의 한 부분이요 사회생활의 필요악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거짓을 뉘우치고 거부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치심마저 실종된 듯한 현실이다.


그리스도교의 구약성경에서는 거짓말의 죄악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단죄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느님을 거역하는 행위이며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재판에서 증언 여하에 따라 피의자의 생명이 좌우될 경우 날마다 주민을 소집했다. 따라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이 계명은 동포인 이웃의 명예,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의 구체적 표현인 셈이다. 이 계명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유인으로서 모든 이스라엘 사람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증언’에 따라 한 사람의 평판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좌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는 거짓말을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계약을 깨뜨리고 불성실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거짓 증언을 하는 자는 진실을 유린할 뿐 아니라 남에게 부당한 해를 끼치므로, 사회 공동체가 요구하는 성실성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


신구약 공히 거짓말을 하느님과의 대립이라고 보고 있다. 이 같은 성경의 정신에 따라 거짓말은 신앙인의 삶과 부합될 수 없는 것이다.


2014042201033037076002_b.jpg사진 출처 - 문화일보


사람에게는 타고난 수치심이 있다. 사람들은 이 수치심을 바탕으로 인간으로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얻고 건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도움을 받는다. 심리적 현상으로 볼 때 수치심은 사회성에 근거를 둔 것으로, 자기의 부족함이나 잘못된 것이 드러나거나 드러날 우려가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신앙적인 면에서 본다면, 진정한 수치심은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 앞에 하느님과 일치하고자 하는 진정한 겸손이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신앙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거짓이 난무하고 거짓에 대한 수치심조차 상실된 오늘날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자신이나 다른 이의 진실하지 않은 삶에 무관심하고 삶을 예사롭게 여기고 수치심을 모르는 사회풍조라고 할 수 있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폄훼, 거친 막말, 안하무인격 행동 등에서는 조금의 부끄럼도 찾아보기 힘들다.


나쁜 친구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그 말을 전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고 결국 죄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가만히 있어도 죄를 짓게 만드는 죄의 구조가 널려있다. 신문 방송 같은 언론매체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보통 언론에 등장하는 내용들은 전문가들이 만드는 것이라 믿고 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에서는 언론도 거짓을 전할 때가 적지 않다. 정부나 광고주 등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해서 진실을 왜곡시킬 때도 있다. 때로는 자발적으로 진실을 호도하는 일에 나서기도 한다. 이러한 왜곡이 벌어지는 이유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적 가르침에 기반한 종교계 언론 기자들 가운데서도 일반 언론 기자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톨릭교회에서는 8계명을 설명하면서 "대중매체를 통한 정보전달은 공동선을 위한 것이다. 사회는 진실과 자유와 정의와 연대 의식에 근거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특히 대중매체는 그 이용자들에게 그 수동성을 길러주거나(…) 비판력이 부족한 소비자가 되게 할 수도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94항)고 가르친다.


오늘도 우리 주위에서는 거짓 증언들이 넘쳐난다. 공신력이라는 가면을 쓴 언론에서는 더욱 교묘한 거짓이 쌓여만 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거짓을 피하고 진리를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식별력이 요구된다.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비판정신의 날부터 벼려야 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거짓을 일삼는 이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진리,“인간만이 부끄러움을 안다.”


이 글은 2016년 5월 25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