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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를 보여라! (이재승)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21
조회
597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하베아스 코르푸스(habeas corpus). 이 라틴어는 문자적으로 ‘당신이 그의 인신(人身)을 가지고 있다’를 의미한다. 인신보호영장(writ of habeas corpus)의 제도적 취지를 살린다면 ‘구금이 적법한지 심사할 수 있게 판사 앞에 구금된 자를 데려오라’는 의미다. 통상 인신보호법(Habeas Corpus Act)은 17세기 영국혁명의 결실로 알려졌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인신보호영장을 포함하여 다양한 영장들이 영국법에 등장하였다. 인신보호영장은 배심제와 더불어 영국인이 자랑으로 삼을 만한 제도다. 우리도 구속적부심사제의 형태로 이를 공유하고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하베아스 코르푸스’는 자의적 구금에 대한 포괄적인 항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명적 통제 수단에서 배제된 집단들이 지금 이 땅에도 존재한다. 불법 이주자와 탈북자가 그러한 실례들이다. 그들은 법 바깥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무법자(exlex)로 규정된다. 인권기준이 아니라 권력의 치밀한 욕망이 그들의 정신과 신체를 재구성한다.


최근에 중국의 북한 식당에 근무하던 지배인과 종업원 13인이 집단으로 탈출하여 제3국을 통해 입국하였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졸지에 이루어진 입국은 누군가의 작전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이 뒤따른다. 이 입국 사건은 북핵실험 이후 대북 경제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는 사례로 매체에서 대서특필되었다. 물론 선거 결과에 당국자의 의도대로 유리하게 작용했는지는 의문스럽다. 최근에는 일부 종업원들이 비자발적으로 입국하게 되었다거나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고 있다. 물론 의혹은 입국과 그 이후 절차에 대한 법적 통제가 너무나 엉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필자는 그래서 그 제도적 개선방안을 말하고 싶다.


필자의 논지는 ‘단적으로, 탈북자의 신체를 보여라!’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법)은 국정원장으로 하여금 최장 180일까지 북한이탈주민(탈북자)에게 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최장 기한을 정했기 때문에 무한정 구금은 아니므로 과거보다 개선되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의 보호센터에 180일간의 구금은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이 기간 동안에 국정원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할지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국정원은 탈북자들의 가족이나 친지, 변호인의 접근을 전면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국가는 탈북자를 법의 보호 바깥에 두면서 위헌적인 구금을 북한이탈주민법으로 합법화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법과 관행이 국제인권기준이나 헌법에 부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법을 혁신하거나 아예 ‘신자유주의적으로’ 철폐하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탈북자들은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에 해당한다. 집단 탈북의 후폭풍은 이제 시작된 것 같다. 북한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의 가족이 납치라고 주장하고, 한국 정부에게 당사자의 접견을 요구하고, 유엔 인권기구들에게 진상조사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호소가 CNN을 통해 국제적으로 전파되었다. 한국 정부는 북한 가족의 행태를 북한 당국의 정치공세쯤으로 간주하고 응수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는 한참 잘못된 생각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권리에 기초하여 정치공세를 펼칠 수 있으므로 그들의 행태가 정치공세인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북한의 가족들에게는 사건의 진실에 대한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한 당국을 상대로 탈북자들과의 접견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든지 신뢰할만한 제3자(유엔난민기구, 국가인권위원회, 국내인권NGO 등)를 통해 그 권리를 대리 행사하여 진실규명을 요청하든지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 당국은 탈북자의 보호를 내세워 가족의 권리를 묵살할 수 없으며, 가족의 요구에 응답해야만 한다.


보호센터(국정원이 운영한 과거 합동신문센터의 새로운 이름)에 대해서는 인권의 관점에서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한국에 망명하거나 귀화하기를 원하는 외국인은 국적법이나 난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런데 탈북자는 북한이탈주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지배적인 학설에 따르면, (북한 국적을 가진) 북한 주민도 잠재적으로 한국 국적자이지만 남북 관계나 국제관계상 북한을 떠나 남한에 입국하는 때에 한국 국적자로 현실화된다. 그래서 탈북자는 일반 외국인과 달리 간편하게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물론 북한이탈주민법은 탈북자를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킨다는 더욱 중요한 과제도 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업무가 국정원의 관할지에 속하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몇몇 사건에서 보듯이 탈북자들은 보호센터나 하나원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통해서 특정한 정치적 의도에 종속된 인간으로 재탄생하거나 기관의 정책에 의해 간첩으로 탈바꿈되기도 하였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입국한 13인이 진정으로 한국 입국을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풍문이 무성하지만 그것을 알 방도가 없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 인권을 다각도로 침해하고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당국자들이 13인의 탈북자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이 나라에 입국했다는 사정을 내세워 북한의 가족, 변호인, 여타 인권기구나 NGO의 접견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국정원은 탈북자에 대한 현재의 보호조치가 수사 절차가 아니라 단순한 행정조사에 불과하므로 인신구속에 관한 헌법 및 형사소송법상 피의자(피고인)의 권리나 변호인의 권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는 국정원의 희망사항일 뿐 인권기준은 그렇지 않다. 유엔난민기구의 지침 1) 나아가 유엔총회가 채택한 ‘피구금자 보호 원칙’ 2)은 이러한 변명을 명백히 거부한다. 보호 원칙은 억류 및 구금을 당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기준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보호 원칙에 의존하여, 또는 이를 활용하여 억류중인 탈북자의 인권 상황을 모니터할 수 있는 권리로 네 가지 정도를 부각시켜 보겠다.


o-DEFECTOR2-570.jpg?1지난달 집단 탈출한 중국 저장성 닝보시 류경식당의 북한 종업원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이 12일(현지 시각) CNN에 공개됐다. 11일 탈북 종업원 3명의 가족은 CNN 인터뷰에서 이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출처 - 허핑턴포스트


첫째로, 구금(억류) 된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법적 지위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원칙 10, 11, 13, 14). 탈북자들은 자신의 권리 상황에 대해 포괄적인 설명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 법무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질적인 자유주의 사회의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탈북자의 보호 신청도 그저 허구적인 요식행위로 그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신청의 의미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더라도 심리적 취약성과 문화적 정치적 이질성으로 인해 자신의 권리에 민감하게 행동하지 못할 개연성이 높다. 어쩌면 탈북자에게 열의를 가진 변호인만이 보호센터에서 유일하게 우호적인 친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탈북자에게 변호인은 권리의 옹호자일 뿐만 아니라 자유사회의 문화적 통역자들일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로, 가족들의 접견교통권을 보장해야 하고, 친지 및 외부 세계와의 통신권을 보장해야 한다. 당국은 구금 및 조치를 가족들에게 통지해야 한다(원칙 16, 19). 현재 구금된 사람들은 독방에서 조사를 장기간 받거나 조사기간에 외부와의 연락도 차단되고 있다. 이들은 조사기간 동안 사실상 무권리 상태에 놓여있다. 그러나 구금된 자와 가족, 친지들과 접견, 전화 연락, 이메일 연락이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해외나 북한에 있는 가족과의 통지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신중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어느 경우에나 그들이 원하거나 구금자가 원하는 경우에는 당국자가 통지를 해야 한다.


셋째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단순히 변호인의 선임권의 보장이 아니라 정기적인 접견을 보장하고, 일정 시간 입회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범죄수사에서도 입회할 수 있는데, 행정조사에서 변호인의 입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 이에 대해서 보호 원칙 18조는 매우 상세하게 정하고 있다. 특히 구금된 탈북자들에게는 국선변호인의 법률적 조력이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변호인의 중요성은 앞에서 설명하였다.


넷째로, 보호센터에 대해 공정하고 독립적인 제3기구(국제인권기구, 국가인권위원회, NGO)가 정기적으로 모니터 해야 한다(유엔난민기구 지침 10). 집단입국과 관련하여 북한에 있는 탈북자들의 가족이 국제인권기구에 조사를 요구했으므로 그 후속절차에 따라 북한이탈주민법도 수정되어야 한다. 이미 2015년 11월 15일 유엔자유권위원회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의 인권침해 가능성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하였다. 인권기준에 적합한 보호센터의 관행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에서 보호센터의 인권친화성이나 보호조치의 적법성 여부보다 입국의 적법성 또는 정상성 여부가 더욱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비자발적인 입국을 차단하는 공정한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탈북자를 국내입국과 동시에 신속히 법관 앞에 소환하여 입국의사의 진위를 확인하고 비자발적인 입국인 경우에는 희망에 따라 출국시킬 수 있는 입국적부심사제(入國適否審査制)로 요약된다. 그리하여 과도하게 긴장을 조성하면 진행되는 기획탈북도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구금기간의 연장에 대해서도 구금적부심사제를 통해 적절하게 통제해야 한다.


이제 정부도 북한 주민의 탈북 유도를 통해 체제경쟁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남한 입국 이후에 이들의 인권보호와 사회 정착에 깊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집권세력이 아직도 남북 간의 체제 경쟁에 몰입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국내 정치를 위해서 기획탈북을 상투적으로 악용한다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탈북자들이 다시 한국을 떠나는 현상도 비일비재하다. 한번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머물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탈북자의 인권보장은 사회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와 교육, 적응 프로그램을 요구한다. 국정원의 프로그램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지는 의문이며, 오히려 정치적으로 편향적인 견해를 가진 시민이 탄생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민주적 세계관에 친화적인 인간, 그리고 자율적인 역량을 가진 시민은 어두운 복도에서 탄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충성의 대상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시민다움에 이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 UNHCR Guidelines on the applicable Criteria and Standards relating the Detention of Asylum-Seekers and Alternatives to Detention, 2012.


2) 모든 형태의 억류 구금 하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Body of Principles for the Protection of All Persons under Any Form of Detention or Imprisonment, 9 Dec.1988 A/RES/43/173>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5월 1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