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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5-22 10:42
조회
928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근 모처럼 감동적인 콘서트를 관람했다. 정태춘·박은옥 데뷔 40주년을 기념한 정·박 부부의 콘서트였다. 정태춘, 박은옥 두 사람의 첫 솔로 앨범은 1978년에 처음 나왔지만 두 사람이 신인 가수로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은 건 1979년이다. 두 사람의 4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는 이들의 음악을 아끼는 주변의 친구와 선후배들에 의해 추진되어 올 한 해 동안 전국 공연은 물론, 전시회, 학술 행사까지 다채롭게 진행된다. 두 사람이 무대에서 콘서트를 벌이는 건 거의 15년만의 일이다. 모처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의 콘서트는 바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많은 팬들의 열정적인 호응을 얻었다.


 70년대 말에 등장한 정태춘의 음악은 그보다 몇 년 전 유신체제의 권력에 의해 강제 퇴출되었던 당대의 청년문화를 복원하면서 이른바 한국적 포크의 세계를 새롭게 심화시킨 독보적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데뷔 이후 개성적인 음악세계를 가진 대중 가수로서 독자적인 입지를 가지며 활동하던 정태춘은 80년대 후반부터 당대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비판적으로 발언하는 노래운동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현실 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많은 곡들을 발표했고 여러 사회단체, 문화운동패들과 연대활동을 벌였다. 무엇보다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은 음반을 연이어 발표하며 검열 당국에 정면 도전했고 이를 통해 마침내 대중음악에 대한 사전 검열 철폐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의 비판적 시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에도 약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의 흐름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좀 더 실질적인 사회변화로 연결되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환멸 속에 떠나고 흩어지는 과정에서 그 역시 적지 않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온 몸을 던져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평택 미군기지 반대투쟁에서 좌절을 겪은 후 그는 오래 동안 칩거와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사진 출처 - 구글


 그 사이 한국의 대중음악 판은 완전히 바뀌었다. K-Pop으로 통칭되는 아이돌 음악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른바 한류의 열풍을 일으키는 동안, 포크나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점점 더 주변화되어 갔다. 음악의 유통 방식도 완전히 바뀌어 이제 피지컬 음반은 일부 아이돌 음악을 제외하곤 사실상 시장가치를 상실했고, 대신 온라인을 통한 음원 유통과 스트리밍 방식이 대세가 되었다. 이 와중에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일부 젊은 세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세대가 자신을 대변해 줄 음악을 갖지 못한 채 대중음악 시장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다.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40주년 프로젝트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 호응을 얻은 것은 두 사람의 노래를 기다린 팬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들이 그동안 얼마나 목말랐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목마름은 단지 정태춘·박은옥의 열성 팬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시장의 주류적 흐름에서 소외된 채 노래방에서 옛날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것으로 음악적 욕구를 달래는 많은 사람, 세대들이 자신의 문화적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창구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40주년 프로젝트가 단지 1회적인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두 사람의 음악적 실천이 단지 오랜 팬들의 향수에 기대어 과거를 추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국면 속에서 새로운 음악적 발언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단지 정태춘·박은옥 만이 아니라 시장에서 소외된 채 침묵하고 있는 많은 과거의 아티스트들이 새롭게 음악적 창조의 에너지를 불태우게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지금 시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세대, 음악 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했던 세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시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문화의 주체로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창조성은 다양성에서 나오며 다양성은 시장의 주변에 내 몰린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존재를 표현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