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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크리스마스가 있을까(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2-06 17:39
조회
1257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시민들의 발걸음이 활기차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차가운 날. 두툼한 외투에 손 장갑 털모자를 쓴 사람들은 추위를 털어내듯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활보 중이다. 때 마침 오후에는 눈 예보가 있었는데 거기에 맞춰 얕은 눈발이 거리를 덮기 시작 했다. 구름이 짙게 깔려서인지 해가 지기전인데도 대동강 유람선은 반짝이는 조명을 켜고 양각도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강가의 의자에 앉은 연인은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그 광경을 감상하고 있다. 내리는 어둠이 내리는 속도를 따라 눈발이 굵어지면 멀리 유경호텔의 벽면위로 수 백 만개의 등불이 밝혀지고 거대한 호텔은 그새 크리스마스트리로 변신해 성탄을 축하한다.


 ‘성탄을 축하 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씩 새겨놓은 화사한 조명이 대동강 물속으로 스며들면 그때 먼데 아득한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가느다란 노래 소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유경호텔의 크리스마스트리가 긴 그림자가 되어 대동강 변에 닿을 때쯤 유람선도 그림자가 낸 길을 따라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어느새 모인 시민들이 노래를 합창한다. 노랫소리가 더 귀해서였을까. 눈발은 더욱 굵어져서 함박눈. 장난기 많은 아이가 이리저리 눈망울을 굴리더니 강변으로 뛰어나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위에 큼지막한 글씨를 쓴다.


 ‘아기 예수님 어서 오세요’ 
상상을 하다 보니 점점 더 범위가 넓어진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평양의 대동강 가에서 벌어진 캐럴 플레시 몹은 ‘평양발 평화의 메시지’가 되어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이를 중계한 각 언론사의 웹사이트는 접속 폭주로 잠시 서버가 다운 된다는 것까지.


 그저 막연한 상상을 해 보았을 뿐 현재의 평양에서는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상이 실제가 될 날이 있을까 기대도 해 보지만 굳이 실제가 아니어도 큰 상관은 없다. 성탄 트리가 없어도 눈발은 나뭇가지위에 쌓이고 성탄 축하 카드가 없어도 아이는 엄마의 손을 놓고 강변의 눈밭을 뒹굴 테니까.


포탄은 아이와 군인을 구별하지 않았네 
 그들이 퍼붓는 포탄은 병원과 군수공장을. 전차와 교회를 구별하지 않았다. 그들이 난사해댄 기관포는 군인과 아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낮이면 무너진 집 더미를 배회하는 어린아이의 울음조차 용납하지 않았고 밤이면 숨죽이며 깜빡이는 호롱불까지도 가만두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가 그들의 표적이었고 그들이 뿌려 대는 포탄은 한겨울을 견디고 봄을 기다렸던 어린 새싹들마저 초토화 시켰다. 1951년 1월 미군의 공습을 받은 평양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거의 모두가 사라졌다.


 난리 통에 피란을 가던 한 가족이 폭격을 당했다. 작은 시골교회 장로였던 아버지가 피난처로 생각한 것이 교회였다. 미국은 기독교의 나라이니 교회는 폭격을 안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교회는 가장 먼저 폭격을 당했고 생존자는 거의 없었다. 겨우 피를 흘리며 살아나온 한 아이가 70의 노인이 되어 대동강 변을 걷는다. 그이에게 미국과 기독교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일은 어리석다. 그 노인에게 교회나 기독교는 평생을 가족 없이 살게 한 증오의 이름 ‘미국’과 동일하다.


 황해도 신천의 리명희 할머니는 양팔이 없다. 신천리 학살 사건 당시 음식을 구하러 나왔던 어린 소녀는 미군의 무차별 사격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결혼을 한 그녀는 삼남매를 낳았다. 큰아들 이름이 ‘복수’ 둘째가 ‘하’ 셋째가 ‘리라’이다.
복수 하리라. -북한의 교회를 찾아가다. 최재영 통일뉴스 2015.12.21-.


 북한이 신천 대학살이라고 부르는 신천 사건은 1950년 10월 평양으로 진격하던 미군이 황해도 신천을 비롯 산천, 안악, 은률, 재령 등지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당시 신천 인근 인구의 1/4인 35.000명이 희생되었다고 기록한다. 1958년 개관한 신천 박물관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많은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현장을 생생히 묘사한다. 2016년 한해만 72만 2000명이 관람했다. 작가 황석영은 2007년에 발표한 소설 ‘손님’으로,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그린 ‘게르니카’의 화가 피카소는 1951년 다시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en Corea)’로 이들의 죽음을 고발한다. 신천 사건은 황해도 내 기독교 우익세력과 해방 후 사회주의 세력이 부딪힌 첨예한 갈등의 결과였다는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모든 죽음은 다 아프다. 죽어 마땅한 죽음은 세상에 없다. 그 단순한 명제에 수긍하지 않는 것은 모든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주관하는 신의 영역에 반기를 드는 일이다. 신천 사건에서 어느 편이 먼저 또 누가 더 많이 학살을 자행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학살이 있었고 그 이유가 신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사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부끄러운 사실만 남았다.


 토지 개혁의 피해자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해방 당시 북한지역엔 약 3,035개의 교회가 존재했으며 그중 2,349개는 평북, 평남, 황해도 등 북한의 서부지역에 있었다. -해방 전 북한 교회 총람.이찬영-. 전체 기독교 인구의 60%가 넘고 약 20만 명에 달하는 숫자다.


 1946년 3월 5일 북한 최초의 중앙권력기관인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는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공포했다. 일본인 토지 소유와 조선인지주들의 토지소유 및 소작제를 철폐하고 몰수된 토지를 농민의 소유로 넘기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북한 전체 182만 98 정보 중 55.4%에 해당되는 100만 8,178정보가 몰수되었다. 몰수된 토지는 고용농민, 토지 없는 농민, 토지 적은 농민, 이주한 지주 등에게 평균 1.35정보씩 분배되었다. 총 농업호수 112만호 가운데 토지분배를 받은 농가 수는 72만호로 약 70%가량이 토지개혁의 혜택을 받았다. 당시 북한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했고 그중 80%가 소작인이었으며 4%의 지주들이 약 58%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토착 질서를 뒤흔든 혁명, 토지개혁. 한국 역사 연구회 2004-


 큰 사찰이나 성당명의의 땅도 몰수 되었으나 공동의 재산이었으니 큰 저항은 없었던 반면 1만 5000평 이상의 토지를 소작으로 부려 먹던 개인은 지주 계급이 되었고 땅을 빼앗겼다. 그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사회주의의 반대편에 서야만했고 그것이 민족주의였다. 같은 민족주의라도 일제시대에 대항했었다면 좌익으로 몰렸을 테지만 그들이 저항한 대상은 사회주의였다. 그들은 스스로 우파가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많았던 황해도와 평안도를 중심으로 반공운동이 거셌다.


 해방 후 1953년 까지 약 7만-10만의 기독교인들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장로교와 감리교의 교권을 장악하며 개신교의 여론을 주도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극단적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한국 예수교 장로회의 큰 어른으로 추앙받는 고 한경직 목사의 증언은 1948년 제주도로부터 벌어진 한반도 남녘의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섬뜩해진다.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 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 (윤정란, <한국 전쟁과 기독교>, 한울, 2015


 해방당시 남한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의 1% 미만이었지만 2018년 현재는 약 20%를 상회한다. 세계 50대 교회의 반이 한국교회다. 전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이 놀랄만한 부흥의 성과가 있었다. 신앙이라는 소중한 열매의 자양분이 전쟁과 분단 그리고 반공 이었다면 이제는 대립이 아니라 남북의 화합을 위해 그 열매를 나누어야 할 때다.



평양 보통강호텔에 설치된 성탄트리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북한에도 크리스마스가 있을까
 북한주민 열에 아홉은 무감하거나 모르고 지나가지만 북한에도 크리스마스가 있다 .전 세계 어디든 십자가를 신앙하는 이들이 있는 곳에 울려 퍼지는 찬송이 거기에도 있다. 북한의 기독교를 대표하는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조그련) 소속으로 보통강 지류 봉수산기슭에 봉수교회. 만경대 구역 룡악산의 일곱 번째 골짜기엔 칠골교회. 그리고 교회 건물은 없이 각 지역의 기독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가정교회(처소교회)가 있다. 한국전쟁 후 벽돌하나 남아있지 않았던 교회의 흔적은 1972년 즈음, 전후 복구 사업의 성과를 토대로 북한 경제의 재도약 시기에 들어서서야 재건의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사막에도 꽃이 핀다. 전후의 폐허 이후에도 신앙의 전통을 품었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빛 하나 없는 가난한 마을에도 주일이면 소박한 찬송이 울려 퍼졌고 그것이 가정교회다. 이들은 당연히 북한당국의 승인에 의해 법에 의한 보호를 받고 자연스러운 북한 주민으로 살아간다. 평양으로만 따지면 낙원동 처소교회. 경상골 예배처소, 대동강 구역 예배처, 성천구역 예배처. 남산구역 처소교회 같은 것이다. 신도수가 적은, 건물 없는 소박한 교회다. 이런 형태로 평양에 30개소를 비롯해 남포에 30개소, 개성 30개소, 평안남도에 무려 60개소 등 현재에도 약 515개의 가정교회가 있고 1만 5000여명의 신앙인들이 드리는 기도가 존재한다. 그들이 드리는 찬송은 내가 부르는 그것과 동일하다. 그들이 부르는 주님은 우주의 창조주로 고백하는 나의 주님과 동일하다. 다만 그들이 드리는 기도의 내용이 동일하지는 않다. 나는 미국의 자본주의식 교회에 익숙해 있고 첨탑이 높은 건물에 익숙해 있다. 그리고 오직 한분인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땅 끝 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열성으로 타 종교를 묵살 하는데도, 또한 주일날 한 번의 뜨거운 기도로 한 주간의 온당하지 못한 행위를 죄 씻음 받는데도 익숙하다. 내가 쌓은 재산이 타인의 눈물과는 무관하며 순전히 성전에 바친 헌금의 대가라는 사실에도 익숙하다. 내가 종교의 자유가 한 치도 없는 북한의 비참함을 주님께 기도하는 동안 그들은 자본주의의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 받는 미국의 혹은 한국의 ‘인민’들을 위해 기도할지도 모른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소복한 눈 알갱이 몇 개가 날아와 성에가 자욱한 유리창에 붙어 집안을 들러본다. 십자가도 없는 집안의 작은 방 안에는 몇몇 가족이 성탄축하 예배를 드리며 웃고 있다. 갓 평양 신학원을 졸업한 전도사가 성탄 축하 설교를 하는 동안 50여년 이 예배 처소를 지킨 노부부가 깊은 묵상을 하고 신앙의 대를 이을 어린 아기의 칭얼거림을 아기 엄마가 찬송을 부르며 달랜다. 북한에 있는 515개의 가정 예배소는 해 마다 이렇게 성탄을 맞을 것이다.


 이들의 신앙을 선전에 의한 가짜라고 얘기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가난한 어부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고 사마리아 여인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거지 나사로를 구원한 아기 예수에게 심판을 구한다면 그이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사실 높은 곳은 다 위태롭다. 보기만 해도 까마득히 솟아있는 대형교회의 십자가도, 어둠의 군주 사우론의 성(城)을 닮은 주상복합 아파트 꼭대기도, 나도 좀 살려달라고 하루에도 몇 명씩이나 오르려 한다는 한강대교의 아치도 모두 위태롭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만의 호화로운 삶을 위해 높은 곳으로 가고 어떤 이들은 가난한 삶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아니면 더 이상 추락하지 않기 위해 높은 곳으로 간다. 나는 신이 있다면 하늘에는 계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구의 가장 중심부에서 더 낮은 곳을 향해 진지하게 기도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중력에 의해 삶을 보장받고 중력은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삼인. 이지상 2015-  


 북한 사회주의 헌법 5장 68조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 수 없다’로 규정 하고 있다. 주체적 사회주의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북한의 체제에서 자본주의는 극복해야할 대상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식의 기독교를 전파하는 일은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이용할 수 없다는 북한 헌법에 전면적으로 위배 된다. 자국민이면 국가 반역죄에 해당 되지만 외국인 신분이면 간첩죄가 적용된다. 북한이 소위 ‘지하교회’를 금지하고 있는 이유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