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도깨비 이야기 (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32
조회
47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뜬금없이 도깨비 이야기냐고요? 역시 여름밤엔 옛날이야기가 아닐까요, 그것도 도깨비 이야기 말입니다. 이름 석 자 정도만 읽고 쓸 줄 알았던 외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한 김 서방이 살았어. 이집 저집 남의 집 허드렛일만 해주고 근근이 먹고살던 그 김 서방이 어찌어찌 해서 도깨비와 친구가 된 거야. 어느 날 도깨비가 김 서방한테 메밀묵을 좀 쑤어달라고 했대. 도깨비는 원래 메밀묵을 제일 좋아하거든. 김 서방이 쑤어준 메밀묵을 먹으면서 도깨비는 “아이구 맛있다... 아이구 맛있다!” 하면서 정신없이 먹더래. 그러고 나서 다음날 김 서방한테 고맙다고 하면서 가마솥을 하나 주더래.


그런데 이 가마솥이 보통 가마솥이 아니야. 뚜껑을 열기만 하면 하얀 쌀이 저절로 나오는 가마솥이었어. 도깨비는 그걸 줄 테니 자기한테 매일 밤 맛있는 메밀묵을 만들어달라고 했대. 김 서방은 그러자고 했지. 그깟 메밀묵 한 덩이하고 매일 쌀이 나오는 가마솥하고 바꾸자니 당연히 그러자고 했겠지,


쌀이 얼마나 나오는 솥이냐고? 할머니집 부엌에 있는 가마솥 있지? 그거보다 큰 거였어. 그 큰 가마솥에서 쌀이 날마다 한 가득씩 나오니 김 서방은 이제 먹고사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었어.


남의 집 허드렛일을 안 해도 되고, 이쁜 색시도 얻었지. 이제 김 서방은 아무것도 아쉬울 게 없었어. 그러고 나니까 이젠 매일 밤마다 집에 찾아와 메밀묵을 달라고 찾아오는 도깨비가 점점 귀찮아졌어. 그깟 메밀묵 따위야 얼마나 하겠어. 사람이 배가 부르면 다 그렇게 돼. 아무튼 도깨비가 성가시게 된 김 서방이 꾀를 냈지.


도깨비한테 “나는 이 세상에서 돈이 제일 무섭네. 자네는 세상에서 뭐가 가장 무서운가?” 하고 물었대. 그러자 도깨비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나는 말 피가 제일 무서워” 그러더래. 김 서방은 대번에 옳다구나 했지. 그리고 바로 다음날 김 서방은 대문 앞에 말 피를 발라 놓았지. 귀찮은 도깨비가 다시 오지 못하게 말이야. 말 피? 아, 말 피도 몰라? 이히힝 하는 그 말 있잖아. 그래 소 말고 말! 그 말의 피 말이야.


그래, 도깨비는 너무 화가 났지. 그래서 도깨비는 김 서방이 가장 무서워하는 걸 김 서방 마당에 던졌어. “이 못된 김 서방아, 너도 죽어봐라. 네가 제일 무서워하는 돈이다!” 그러면서 말이야. 그것도 매일매일 밤마다.


아무렴... 김 서방은 금세 고을에서 가장 부자가 됐지.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첩을 열둘이나 거느리게 됐지. 작은마누라 말이야. 응? 자기 색시가 아무리 이뻐도 돈 많은 사내들은 다 그래.


그렇다고 김 서방이 죽을 때까지 떵떵거리는 부자로 살았냐고? 그건 아니야. 도깨비들은 자기가 줬던 것은 꼭 다시 가져가거든. 도깨비한테 받은 돈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나뭇잎이 된다는 거야. 그 돈으로 지은 집도 다 허물어지고. 결국 김 서방은 거지가 되어서 죽었대. 이제 그만 자자.


아! 그런데 혹시 니가 도깨비를 만나 횡재를 하게 되면 무조건 땅을 사야 되는 거야. 도깨비가 다른 건 다 줬다 뺏어가도 땅은 못 뺏어가거든. 내 말 명심해. 꼭 땅을 사야 된다, 알았지?


5805754.jpg사진 출처 - yes24


일찍이 부동산 땅 투기만 한 것이 없다는 걸 예견하셨던 걸까요? 아무튼 외할머니는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 돌아가실 때까지도 도깨비가 실제로 살아 있었다고 믿는 분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제게 들려주었던 못된 도깨비, 바보 같은 도깨비, 무서운 도깨비 등 많은 도깨비 이야기는 그저 재미가 아니라 외할머니가 믿고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제가 어느 날 산길에서 도깨비를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밤길에 누가 너를 “김 서방” 하고 부르면 도깨비인 줄 알라든가, 씨름을 하자는 도깨비를 만나면 반드시 왼쪽 다리를 걸어 넘기라든가 등등의 도깨비에게 홀렸을 때의 대처법을 진지하게 말씀해주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뭘 믿고 저리 버티겠나 하는 이야기가 뜨겁습니다. 롯데그룹 부회장이 자살하기 전 남긴 유서에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롯데그룹 비자금은 없었다.’고 썼다고 합니다. 어느 명망 있는 역사학자의 파렴치한 행태를 보며 ‘정말 그 사람이 미친 게 아니고서야...’ 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걸까, 저는 무엇에 홀려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마음 깊이 남아 있는 외할머니의 말씀이 있습니다. “도깨비의 키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도깨비는 원래 올려다볼수록 커지고 내려다볼수록 작아진다. 그러니 도깨비와 앞에 섰을 때 네 눈높이가 바로 도깨비의 실제 키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8월 31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