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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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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 (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23
조회
484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 가방에 김밥과 함께 싸갔던 것이 있었습니다. 사이다였습니다. 소풍 때나 먹을 수 있었던 맛있는 김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목이 메면 사이다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초등학교 소풍 때 마셨던 사이다는 그렇게 시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몇 시간 동안 가방 속에 들어있던 사이다는 그저 미지근한 탄산 함유 설탕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이다’라는 말이 유행인가 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면 ‘사이다 연기’, ‘사이다 발언’ 등등. 아무튼 시원하다, 혹은 답답한 속을 확 뚫어준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8607ecd39d798737d9c25a4019704c97.jpg사진 출처 - 구글


지난 주말에 아는 선배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날씨도 화창하니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겸사겸사 한 잔 하자는 선배의 초청에 그동안 무심했던 저와 또 다른 후배는 만사 작파하고 선배의 집을 찾았습니다. 선배는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으니, 경기도 용문쯤으로 하겠습니다)에 내려가 글을 짓고 텃밭도 가꾸면서 삽니다. 서울을 떠나 그곳에 정착한 지 벌써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용문역에 내려 하루 네 번밖에 다니지 않는 시골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지나면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서 산길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그 선배의 집입니다. 걸어 올라가는 길의 왼쪽에는 작은 개울이 있습니다. 5월 말, 오후 두 시의 햇볕은 생각보다 뜨거웠습니다. 개울 중간 중간에 벌써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행락객들이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한 손에 삼겹살 담은 봉지를 든 저와 과일 봉지를 든 또 다른 후배 역시 연신 땀을 닦으며 산길을 올랐습니다. 또 다른 후배가 제게 물었습니다.


“성준이가 올해 열일곱 살이 된 거지?”
“그런가? 고등학교 2학년이면 열일곱인가?”


성준이는 선배의 외아들입니다(이름이 무언지 중요하지 않으니 그냥 성준이로 했습니다). 성준이는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선배가 서울을 떠나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 중 하나는 성준이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선배의 집에 거의 다다를 무렵, 마당 근처 길가에 혼자 쪼그리고 앉아 꽃을 만지고 있는 성준이가 보였습니다. 온통 꽃에 정신이 팔렸는지 저와 또 다른 후배가 제법 가까이 왔는데도 인기척도 느끼지 못 했습니다. 어떻게 놀라게 할까 하고 저와 또 다른 후배는 성준이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성준이 뒤에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성준이는 혼자 열심히 중얼중얼 하고 있었습니다. 꽃잎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무언가 들꽃에게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 저와 또 다른 후배는 놀라게 해줄 생각도 잊어버리고 성준이를 내려다보며 그냥 배시시 웃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나타났을까요. 선글라스를 낀, 50대 후반쯤 되는 아저씨가 저희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이 근처 개울가에 놀러 온 사람 같았습니다. 요즘 말로, 빙구 같이 웃고 있는 저희 얼굴을 쓱 훑어보던 50대 후반이 느닷없이 성준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야 임마, 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리고 50대 후반은 저와 또 다른 얼굴을 보며 씩 웃었습니다. 그 표정을 보니 선글라스 속의 한쪽 눈이 우리를 보고 찡긋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와 또 다른 후배는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성준이가 선글라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엄마가 좋아, 너는?”


50대 후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성준이가 다시 물었습니다.


“아이 참, 너는 누가 좋으냐고...?”


50대 후반을 바라보는 성준이는 천진난만 그 자체였습니다. 왠지 두 눈망울이 더없이 초롱초롱하게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50대 후반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몹시 당황한 그는 저와 또 다른 후배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엇험!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산길을 내려갔습니다.


성준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반갑게 맞아주며 선배가 물었습니다.


“덥지? 뭐 시원한 거 줄까?”


또 다른 후배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사이다!”


사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사이다’라는 말의 느낌을 알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사이다가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 마시던 뜨뜻미지근한 설탕물이 아니라 더없이 시원한 청량음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6월 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