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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는 새해 이야기(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1-09 17:49
조회
110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새해 벽두에 이순자 씨의 ‘민주주의의 아버지 전두환…’ 운운의 기사를 보고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육군사관학교에 가려고 필사적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의 꿈은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진 몸, 절도 있는 몸짓 등. 키가 약간 작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까 당시 제 눈에는 그 친구가 이미 군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육사 입학은 대통령이 되기 위한 첫 단계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죽고 나서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였으니 그의 말에는 더욱 확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을 뿐, 그다지 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굣길에 그는 저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책을 한 권 권했습니다. <황강에서 북악까지>라는 전두환 자서전이었습니다. 지금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위인전이 그렇듯 뭐 그랬겠지요. 어떤 장면보다 인상에 남아 있던 것은 ‘전두환 대통령’과 ‘이순자 여사’의 결혼 이야기였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영화 같은 사랑과 운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려 했던 것 같은데 너무 감정적이고 과장되어 있어 오히려 코미디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jtbc


 이순자 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황강에서 북악까지>의 자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인터넷에 혹시 누군가 그 장면을 옮겨놓지 않았을까 해서였습니다. 책 내용은 찾을 수 없었고 책에 관한 글들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 책을 썼던 작가와 당시 문단에 관한 글을 보았습니다.


…허문도를 만난 천금성은 뜻밖에도 ‘전두환 장군의 전기를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는다. 천금성은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그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마도 그에 뒤따를 ‘반사이익’도 염두에 뒀을 법하다.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70년대 중후반 무렵 박목월과 박재삼이 ‘육영수 전기’를 써서 각각 억대를 챙겼으리라는 풍문도 순간적으로 천금성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천금성의 40대 이후의 삶을 뒤죽박죽으로 만든 잘못된 판단이었다. 어쨌거나 그 자리에서 천금성은 허문도로부터 착수금조로 50만원을 건네받았다.
 원고지 1,200장 분량의 전두환 전기 ‘황강에서 북악까지’는 착수한 지 약 3개월 만인 10월 말에 완성됐고, 제5공화국이 출범하기 약 한 달 전인 81년 1월 말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천금성이 챙긴 돈은 취재 과정 중 추가로 받은 200만원과 후에 인세로 받은 700만원을 합쳐 약 1,000만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시중에 깔린 책은 별로 팔리지 않아 몇 달 뒤 민정당과 평통자문회의가 1만여 권의 재고를 모두 구입해줘 그 정도의 인세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천금성의 막연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문단에서는 천금성을 기피인물로 따돌렸고, 출판사나 잡지사들도 공공연히 냉대해 아무리 소설을 써도 발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소설가로서의 기능마저도 상실할 위기에 빠진 것이다. 자업자득이기는 했지만 5공의 권력층에 대한 천금성의 불만은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불평을 털어놓았고 이런 행태는 고위층에까지 전해져 특수수사대에 끌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2011년 글, 정규웅, <정규웅의 문단 뒤안길>에서


 당시 마땅한 원고료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천금성 작가가 어느 기업 사보에 쓴 글도 보았습니다. 제 기억 속의 사랑 이야기는 전두환 씨가 중위, 이순자 씨가 고교 시절이었는데 다른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기 자료수집을 위해 필자는 두루두루 측근과 관련자들을 만났는데, 내용 가운데 하나인 ‘결혼’ 장(章)에서 육사 2년생(전두환)과 진해여중 2년생(이순자)의 만남을 묘사한 대목이 영부인으로서는 눈에 거슬렸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 내용은 인쇄기에 걸리기 전 삭제되는 비운을 맞고 말았지만, 증언자인 경기여고 동창생(당시 불광여중 강경옥 교사)을 호되게 나무란 다음 내쫓다시피 미국으로 출국시켰다는 이야기도 있고 보면 영부인으로서는 필자가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
-2014년 글, 천금성, <자손대대의 영광이라니!>에서


 아뿔사!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새해에는 무언가 희망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갑자기 오랜 기억이 떠올라서, 호기심에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그만 두서없는 이야기만 옮겨놓고 말았습니다. 이순자 씨의 인터뷰 때문에 제 넋이 빠져버린 게 틀림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니! 저는 신년벽두부터 우두망찰… 천장만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집필한 천금성 작가는 2016년에 별세했습니다.
**육사에 가겠다던 고교동창은 체육대학에 진학했으며, 한 10년 전쯤 서울 강남 지역 어디서 시의원에 당선, 좋지 않은 일로 의원직 상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