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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인권을 가르치며 (김 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1 10:08
조회
459
대학에서 인권을 가르치며 나는 강좌내용에 되도록 많은 주제를 담으려 한다. 인권에 대한 오해, 인권의 개념과 역사, 세계인권선언 및 국제인권규약의 이해, 유엔의 인권보호제도와 절차, 인권개념의 보편성과 아시아적 가치, 인권과 민주화, 국가보안법에 담긴 이데올로기 및 법과 인권의 문제 등을 이론적 접근에서 다루며, 각론에서는 한국 사회에서의 생명 및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법과 인권, 노동기본권, 신자유주의와 사회권의 문제, 교육권과 청소년 인권, 환경과 건강권, 보건의료권, 장애인 인권, 여성 및 아동의 인권, 문화권, 과학기술과 인권, 사형문제, 북한 인권과 세계의 인권문제와 인권운동,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이해 등을 조별 발표 및 토론을 위주로 하여 다룬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실천의 문제로서 인권운동 및 인권교육의 현황과 과제, 각자가 할 수 있는 인권실천 방안 등을 논하며 실천을 독려한다. 이러한 한학기의 수업과 시험 등이 학생들에게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할 좋은 기회인 것임은 분명하겠고 학기말시험을 채점할 때 그런 생각은 확실해진다.

그러면서도,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기에 학기말에 근접하여 추가로 과제를 내는데, 주로 내는 세 가지 문제는 이번 강좌에서 다루지 않은 중요한 인권 현안들을 제시해보라는 문제, 세계인권선언 30개 조항을 어떻게 보완해야할지 31조부터 33조를 추가해보라는 문제, 그리고 가정인권헌장 10개항을 작성해보라는 문제이다. 우선, 첫 문제를 풀면서 학생들이 제시한 인권 현안 중에서 예리한 감수성이 보여지는 것들을 몇 가지만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노숙자 문제 중에서도 여성 노숙자의 성폭력 문제, 인터넷 마녀사냥 문제, 에이즈 및 한센병 환자들의 인권문제, 찜질방 탈의실의 CCTV 문제, 문맹 혹은 난독증인 이들을 위해 가급적이면 영화자막 대신 더빙을 해야 한다는 주장, 입사지원서를 쓰면서 재산, 주거형태, 부모의 학력 등까지 적도록 요구되는 현실, 흡연자 및 비흡연자 각각의 정당한 권리, 채식주의자들의 음식선택 기회의 평등문제, 개인생체정보 자기 결정권, 이슬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편견과 불관용의 문제, 자발적 성매매여성의 성매매 문제, 기업의 비윤리적 경영, 학교에서의 특정종교 강요 문제, 난민인정문제, 미군기지화로 인한 대추리 주민들의 인권문제, TV와 인터넷 등에 벌어지는 특정계층 및 집단의 희화화 문제, 농촌 총각의 결혼할 권리, 여학생들의 생리결석 인정 문제, 간통죄 폐지 논란,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드러난 흑인 차별에서의 교훈, 다른 어느나라에도 없는 소년소녀가장문제, 뚱뚱한 이들에 대한 차별 및 외모지상주의의 문제, 공개입양에 대한 찬반론 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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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학생들이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들도 제시하는 것을 보며 이들이 인권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인권감수성도 키워가고 있음을 본다"


사진출처 - 한겨레, 연합뉴스, 주간한국, 프로메테우스


  더 나아가, 화장실 청소부 아줌마들이 당할 수 있는 수모, 출산 직후 아기가 거꾸로 들려 엉덩이부터 맞지 않을 권리, 직장여성이 해고의 걱정 없이 임신할 권리, 장애인 여성이 사회복지의 혜택을 받으며 임신 및 출산할 권리, 동물의 권리, 죽은 자의 인권(예를 들어, 쯔나미 사태에서처럼 시신이 길거리에 방치되지 않고 장례 치러질 권리, 무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훼손되지 않을 권리, 죽은 이의 신원 및 사인이 밝혀질 권리, 의문사의 경우 진상 규명, 그리고 명예회복의 권리, 죽은 자의 초상권) 등도 제기된다.

세계인권선언의 보완으로는 성적(性的) 정체성 권리,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의 권리,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권, 환경권, 불치병 환자의 치료약 접근권의 국제적 보장, 전쟁 및 테러로부터의 보호와 평화권, 유전자조작 금지 및 자신의 생체정보보호권과 자기결정권, 의학기술과 인권, 정보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 약소국가에 대한 차별 금지, 다국적기업의 윤리 문제, 인간 및 모든 종(species)의 보호의무, 중대한 인권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배제, 그리고 인권교육을 받을 권리와 국가의 인권교육을 행할 의무를 별도의 조항으로 추가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가정인권헌장에서는 세계인권선언에서 열거한 각종 인권들을 가정 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묘안들이 속출하는 데, 예를 들면, 가족 모두는 평등하기에 상호 존중해야 한다,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동등한 발언권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가진다. 개인의 수입 및 용돈을 자신의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이 받고자 하는 교육, 일하고자 하는 직업, 그리고 결혼할 상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모두 건강할 권리가 있으며 서로 보살펴야 한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가족으로서의 의무 이행이 앞서야 한다 등이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가족회의를 정기적으로 열어야 하며 이때 술에 취한 상태로 참석하는 것은 금한다 등의 단서조항도 제시된다. 이렇게 각자가 작성한 가정인권헌장을 지금부터라도 거실 벽에 가훈처럼 붙여놓고 실천해보라는 취지를 학생들은 십분 공감하는 것 같다.

이러한 과제물을 읽으면서 나는 학생들이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들도 제시하는 것을 보며 이들이 인권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인권감수성도 키워가고 있음을 본다. 아직도 대학에서 인권을 정규수업으로 강의하는 대학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되는 게 현실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발견은 인권을 꾸준히 가르치는 선생에게 소신과 사명감에 더하여 보람을 키워주는 것이라 하겠다.

인권교육을 받을 권리는 그 자체가 인권에 속한다. 세계인권선언 제26조에서 언급하듯, “사람은 누구나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 . 교육은 인격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또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경을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입시위주의 정규 교과 속에서 인권교육을 못 받고 자란 한국 사회 구성원 거의 모두는 이러한 인권을 구조적으로 만성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권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며, 인권교육의 활성화가 인권운동의 주요 과제 중의 하나인 이유이며, 아울러, 인권교육이 하나의 운동, 즉 인권교육운동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대학에서 인권을 가르치며 나는 오늘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며 다짐을 새로이 한다. 그러한 다짐에서 시작하는 인권교육은 늘 보람과 희망을 준다. 인권을 배우고 감수성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많아질수록 이 시대의 희망은 커진다.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양학부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