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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과 개악 (위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4:50
조회
585
나는 전교조 세대라고 한다.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나를 가르치고 나를 일깨워 주고 나를 알게 하여 준 선생님들이 무수히 해직됐다. 전교조가 결성되고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같은 학년의 친구들 중 일부는 교육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며 대자보를 붙이고, 농성을 하기도 하고, 신문을 만들어 돌리기도 했다.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처지에 눈물짓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불의를 바로잡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에 절규했다. 그때 난 온순한 양처럼 열심히 공부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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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의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복직된 선생님이 돌아와 교단에 섰다. 함께 했던 선생님들은 여전히 복직되지 않은 채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선생님은 우리에게 예전처럼 같은 내용의 과목을 가르치기 위해 돌아왔다. 온순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말썽부리지 않는 나인데, 돌아오신 그 선생님께 대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그냥 들이댔다.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이 굴었던 것 같다. 철없이 굴어 마음 아프게 했고, 마음 아프게 해서 지금 마음 아프다.

내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무렵 같은 사무실의 선배 변호사로부터 소개받은 사건이 하나 있다. 교원징계재심청구사건이 그것이다. 내용인즉슨, 전교조 선생님들이 사학재단의 비리에 항의하다가 징계파면을 당했고, 그 징계처분이 부당하다고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다시 판단하여 달라는 청구를 한 것이다. 사학비리라는 것을 처음 접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재심청구를 통해 학교로 돌아온 선생님들과 사학재단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생각해보니 그 재단의 분쟁도 이제 곧 5년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징계를 통해 학교에서 내쫒고, 다시 돌아오고, 재단에서 고소해서 재판을 받고, 형벌을 받고, 학부모들이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하고, 다시 징계를 하고, 또 고소하고, 재판받고, 같은 동료 선생님이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하고, 또 소송을 하고……. 아무리 분해도, 그래도 선생님들인데, 선생님들이 참아야 하고 지저분한 일에 발 담그지 마시라고 조언해온 게 4년째다. 그런데 이제 앞이 보이질 않는다. 언제쯤 끝날 것인지 알 수 없다. 끝날 때까지 선생님들에게 참고만 있으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 와중에 참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사립학교다 보니 공립학교에 비해 다른 학교로 전근 갈 일이 별로 없어 선생님들끼리 참 친하단다. 아마도 재단의 비리가 없었다면 선생님들끼리는 참 좋은 동료로 오래 오래 같이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끔 맘에 들지 않아도 서로 갈등하고, 질시하고, 증오하지는 않았을 거다. 어려서 밥 먹여주고 같이 놀아주던 동료 선생님의 딸아이에게 평소 하던 대로 말하고 행동한 것이 범죄가 되어 인신을 옭아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텐데, 이제는 그렇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힘든 일상이 그 선생님들에게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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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립학교법을 두고 말들이 많다. 연일 계속 터지는 사학비리와 그로 인한 학사파행을 막기 위해 사립학교법을 민주적으로 개정하여야 한다는 입장과 정치권력에 의하여 통제되던 사학을 사립의 본질에 맞게 사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쪽으로 개정하여야지 현재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립학교법을 개악하려는 것이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원래 학습권과 교육권이라는 것은 종교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데서 비롯된 자유와 권리이다. 그리고 종교의 간섭을 어느 정도 넘어선 시점에서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그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종교의 권위에 대항하여 사립학교를 건립하여 교육을 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찾던 것이 근대 들어 중앙집권화된 국가권력의 국가주의적, 파시즘적 교육을 배제하고 누구든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계발하는 교육에 관한 자유와 권리를 찾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갖는 교육의 자유와 권리 신장에 있어서 사립학교가 갖는 중요성이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에 관한 논의를 지켜보면서, 연일 불거져 나오는 사학비리 소식을 접하면서, 사립학교법 개정을 반대하는 측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특히 교육의 자유와 권리의 주체가 교육의 자유와 권리를 어떤 방식으로 보장받아야 하고, 그를 위해 어떤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 적어도 한번은 고민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들의 주장 안에 학생은 없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어떤 식으로 온전히 보장할 것인지, 그를 위해서 교육의 담당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넘어 애당초 교육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관념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대구의 한 사학재단에서 분쟁이 발생했다는 말을 들었다. 온갖 회유와 협박과 폭력이 난무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답답했다. 누가되었든 적어도 5년은 멍들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5년이지 그 동안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되도록이면 조용히, 되도록이면 온건하게, 되도록이면 당하기만 하면서, 되도록이면 말을 아끼면서 분쟁을 해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어렴풋이 느낀다. 그럴 것 같으면 분쟁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니까.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다시 복직하셨던 선생님에게 대들었던 내 모습이 참으로 많이 후회된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 분이 겪었을 고통의 깊이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치기어린 행동으로 다시 가슴을 후빈 내 모습이 참 후회스럽다. 왜 그 선생님이 그런 고통을 겪어야 했었는지 요즘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든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