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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이 사람들 (허윤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6:18
조회
695
성매매 종사자인 외국인 여성들이 있습니다. 사회 통념적으로 매춘행위는 지탄받는 일입니다.  성매매는 근본적으로 근절하기 어려운 문제이기에 정부규제를 통해 효율적으로 ‘감독’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윤리 도덕적으로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며,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죄악시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여성들을 만나 상담하며 그 삶의 여정을 듣다보면 누구도 이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한 여성으로서 꿈과 희망과 사랑이 가득했던 이들이 매춘이라는 죄에 빠지게 된 것은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가난이라는 무거운 짐 때문입니다.  ‘외국여성 성매매 실태조사’(설동훈 2003)에 따르면 외국인 여성 성매매 종사자의 국내 유입 원인으로, ① 자본주의 세계체계에서 국가들 간의 불균등 발전과 성의 상품화, ② 인력을 해외로 송출함으로써 영리를 추구하는 국제인력송출업자 또는 국제인신매매조직, ③ 가난과 실업이 만연한 송출국 사회와 자국인의 해외 송출을 장려하는 정부정책 및 가부장제 문화, ④ 성산업에 필요한 여성을 충원하려는 한국사회와 그것을 방관한 정부정책을 꼽고 있습니다. 

외국인 여성 성매매 종사자 중 상당수는 무용수나 연예인 등의 직업을 소개받아(예술흥행 비자 E-6) 우리나라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계약과는 달리 유흥업소에 넘겨져 매춘을 강요당하며 인권을 유린당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노동사목위원회는 2001년 2월에 성매매 종사자인 외국 여성들이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피기 위하여‘벗들의 집’이라는 쉼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매년 30여 명이 넘는 외국 여성들이 매춘 소굴에서 탈출하여 도움을 호소합니다.  이들은 벗들의 집에 머물면서 과거의 아픔을 딛고 잃어버린 꿈을 키우며 정상적인 일자리를 찾아 노동자로 살아가거나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받은 육체적 학대와 정신적 상처가 크기에 의료지원 및 심리치료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이 앞으로 희망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해 주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이들이 재활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나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거나 전무한 상태이고, 쉼터도 벗들의 집 한 곳뿐입니다.

벗들의 집에 입소한 외국인 여성의 국적을 보면 구소련과 필리핀 여성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중국(조선족), 베트남, 태국, 페루,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피지, 루마니아, 몽골 등 다양합니다.  이 여성들이 비록 매춘행위를 했지만 대부분 폭력과 협박에 의한 일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 이들이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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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벗들의 집에 머물렀던 여성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 여성들은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입니다.  자국에서 유치원이나 학교 교사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30-50달러(4-7만원 정도) 정도 받는 급여도 6-7개월 체불되어 있는 상태에서 500달러(70만원)이상을 벌 수 있으니 한국으로 가자는 브로커(국내 포주들과 연계되어 있는 러시아 마피아)의 유혹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목소리로 들렸답니다.  거의 대부분은 이미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에서 성매매에 종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가족이 굶주리고 병든 부모님을 살리려는 마음이 앞서기에 ‘내 몸가짐 바로하면 되지!’ 하는 의지를 가지고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열심히 일해서 잘살겠다는 희망과 기대가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유혹인지도 모르고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들 앞에 펼쳐진 삶은 협박과 감금이요 강요된 매춘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꿈도 희망도 사라집니다.  한 여성으로서 극심한 수치심에 시달리고, 몸과 마음이 황폐화되어 가는 속에서 수십 번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그 일이 몸에 익어서도 아닙니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되든 지간에 어떻게 해서든지 단 10불이라도 가족에게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몸부림인지 모릅니다.  마치 일제시대 잘 살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하와이 집단 농장 등 여러 나라에 노예로 팔린 신세가 되었던 지난날 암울했던 우리네 여인들의 기막히고 가련한 삶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고 말이 다르지만 이들도 엄연히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꽃다운 아가씨로서의 희망과 미래에 대한 청순한 꿈을 지닌 우리네 딸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도 어린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가정의 심각한 가난 때문에 고생을 했었는데, 그 때 제 여동생이 중학교 과정도 마치지 못하고 16세에 공장생활을 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오빠 공부시키고 불편하신 어머니 봉양하기 위해서 일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의 삶을 가족을 위해 희생한 동생이 대견하고 고마움에 머리 숙여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도 가난한 나라였다면 우리 여동생들도 가족의 생계와 부모봉양을 위해 손가락질 받는 이 외국인 여성들 자리에 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난 때문에…….

이제 다시 한번 바라봅시다.  애정의 시선으로, 가족의 마음으로 그 여성들을 바라보면, 그 외국인 여성들이 다름 아닌 우리의 여동생이요, 우리의 딸이요, 우리의 손녀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찌 손가락질 하겠습니까!  가족을 사랑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어찌 모른 척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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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보호 장치가 부족한 현실이지만 많은 NGO단체와 종교단체들, 사회봉사자들이  이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분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성의 상품화와 값어치를 따지는 세상에서도 ‘사람을 사람으로 볼 줄 아는 눈과 마음’을 지닌 성숙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손길을 잡으며 인간의 자기 존엄성조차 상실해 가고 있는 외국인 성매매 여성들이 희망을 가지고 죽음에서 삶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인식하고 그 봉사의 열정이 지속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국가는 성매매 근절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마련에 더욱 힘써야 하겠지만, 당장 시급히 요청되는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여성들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쉼터를 확충하고, 인력 및 시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