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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다녀와서 - 인류가 바라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상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5:45
조회
466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이스라엘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테러다 뭐다 해서 얼핏 위험하고 시끄러운 곳이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인류 역사와 그 역사에 필수불가결하다시피 뒤따르는 분쟁의 축소판이란 생각에, 거기에다 뭔가 재미있는 게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구미가 동했다.

대부분의 여행, 특히 고향땅을 벗어나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방문한 나라의 좋은 면만을 보는 게 일반적이다. 비싼 돈까지 들여 큰 맘 먹고 나서는 길이니 왜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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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 여행은 언제부터인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수많은 삶, 그리고 그 속에 놓인 아픔마저도 함께 하고픈 마음을 잠시나마 풀어놓고 오는 장으로 자리해오고 있다. 그것은 아마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껏 줄기차게 생각해오고 있는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연민이나 안타까움 같은 게 내면 깊숙이 놓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국적기를 이용하는 바람에 이집트를 거쳐 가야하는 여정이 좀 번거로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나로서는 도착한 날부터 이집트에서는 수십 년만에 일어났다는 데모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색다른(?) 체험이었다. 1981년 집권과 동시에 비상계엄을 실시하며 이집트를 철권 통치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이 나라 안팎의 반대 여론에 밀려 올 2월 26일 직선제 개헌안을 내놓은 이후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데모는 우리가 머물던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시민들에게마저도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그들에겐 생소한 것이었다.

야권과 시민단체 등이 벌이고 있는 무바라크 퇴진 운동은 ‘키파야(‘충분하다’는 뜻의 아랍어) 운동’이라 불리는데 독재도 충분하고, 24년간의 대통령직 재위도 충분하고, 무바라크가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우려는 정치 조작도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 뼈아픈 독재를 체험해야 했던 시절이 떠올라 어떻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나 치밀기도 했지만 어찌하랴 잠시 스쳐가는 3자인 것을….

이스라엘 땅에 첫발을 들여놓던 때는 무척이나 긴장된 순간이었다. 가방에 넣어갔던 ‘팩소주’ 때문에-아마 그들의 입장에선 액체폭발물이 아닐까 염려할 만도 하다-몇 시간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잡혀 있어야 했다는 선배의 경험담이 뇌리에서 생생히 살아난데다 이스라엘 보안요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도 인상이 하나같이 딱딱해 원래 웃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세계지도를 펴놓으면 간신히 점 하나 차지하는 나라, 전라남북도를 합친 크기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인류의 역사에 그토록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뭘까?’ 내 생각은 온통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데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질문은 인류와 인류의 존재양식에 관심을 지닌 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숙제로 연결됨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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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군인들. 처음엔 늘 전시상황이니 그런가보다 했는데 군인들의 얼굴이 아무래도 어려 보여 알아보니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이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국민이면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을 의무적으로 군에서 복무해야 한다는 설명에 가슴 한 곳이 무거워졌다. ‘저들이 총을 들기에 충분히 이성적일까?’라는 생각보다는 ‘저들이 왜 비슷한 또래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살상하는 일로 내몰려야 할까’ 하는 생각에 슬픔이 몰려왔다.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답게 인간의 종교 혼으로 이뤄진 듯한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은 저마다의 신을 가슴에 품은 순례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성경을 알면 믿음을 알고, 이스라엘을 알면 세계사를 안다’는 말을 굳이 빌지 않더라도 예루살렘은 순례객들로 하여금 지금껏 자신이 지녀온 뭔가를 확인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을 심어주었다.

통곡의 벽(Western Wall), 게쎄마니 동산, 최후의 만찬, 올리브산, 십자가의 길 등 무수히 많은 말들이 역사와 얽히는 땅을 돌아보는 가운데 숨이 턱 막히는 체험을 했으니 그 곳이 바로 분리장벽 건설이 한창인 베들레헴이었다. 2년 전 이스라엘이 “자살폭탄 테러범들의 침입을 차단한다”는 명분 아래 쌓기 시작한 이 8미터짜리 장벽으로 예루살렘시 경계에 걸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은 분리장벽에 포위된 모양새였다. 또 팔레스타인 자치도시인 베들레헴 안에 있는 유대교 성지 라헬의 무덤을 시 구역과 분리해 이스라엘 쪽에 포함시킴으로써 흡사 벌레 먹은 사과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례자의 눈을 잠시 떠나자 자신들만의 평화와 안위를 위해 수많은 이들을 감옥 아닌 감옥에 가두려는 인간의 노력이, 하늘에 오르려 바벨탑을 쌓던 그토록 지혜롭던(?) 인류의 조상들에 겹쳐 떠오르며 가슴까지 먹먹해지는 아픔이 밀려왔다. 인류를 분열시키고 전쟁으로 몰아갔던 게 그 알량하고 얄팍한 지식 때문이 아니었던가.

예수가 묻혔다는 ‘거룩한 무덤성전’. 지금도 가톨릭을 비롯해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교회, 에디오피아 정교회 등 수많은 종파가 갈가리 찢어 소유하고 있는 성전은 인류가 그토록 갈구하는 평화와 사랑이 지상의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며 저마다의 평화만을 평화로 강요하는 현생 인류의 모자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중동의 화약고’. 이스라엘이 이 오명을 벗고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평화 속에 살기 위해선 그 자신들만의 힘만으로는 힘들다는 게 순례 속에서 건진 결론이었다. 그들에겐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돌아보게 하고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할 ‘착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하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