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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식의 법치주의와 헌법수호 궤변 (김희수)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42
조회
421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치주의는 우리 헌법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핵심입니다.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지배할 것입니다. 사람에 의한 지배의 위험성을 실감한 인류는 법에 의한 지배를 근대 입헌주의 원리로 채택하였고, 현재도 마찬가지 입니다. 박대통령 게이트의 핵심은 법치주의 유린이고,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박근혜라는 개인의 지배가 초래한 국헌문란입니다.


그래서 대통령님의 헌법과 법치주의 관련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지면상 간략히 몇 개만 볼 수밖에 없어 서운하기도 합니다.



2013. 4. 25.
(법의 날 축사)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원칙 아래 공정하고 엄정한 법집행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보다 성숙한 법치주의를 구현해서 국민이 행복한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갑시다.”

2015. 10. 21.
(경찰의 날 축사)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세력에게는 엄정한 법집행을 해주기 바란다. 법의 권위가 바로 설 때 진정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이 가능하다.”

2016. 10. 21.
(경찰의 날 축사)

“법위에 군림하는 떼법 문화, 불법과 무질서가 용인되는 사회에는 발전도, 희망도, 미래도 없다. 사회근간을 흔드는 헌법파괴행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

PYH2016102124660001300_P2.jpg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 지당한 말씀을 대통령님께서 지키지 않으시고, 거꾸로 짓밟은 것이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이라는 오늘의 사태를 야기하였다는 사실은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저도 배웠는데, 그것도 틀렸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니 제 혼이 비정상이 되었습니다. 대통령만이 법치주의 예외인 법치주의는 법치주의가 아니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법치주의와 헌정을 유린하신 대통령님께서는 검찰 수사까지 뭉개면서 부산 엘시티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는 지시를 하셨다니 입이 그저 딱 벌어질 뿐입니다. 대통령님 말씀은 나는 국가 원수이니 법의 예외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모독이고,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역사는 나치 치하에서 횡횡했던 형식적 법치주의가 민주주의를 파괴한 주범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형식적 법치주의에서는 권력이 법률을 사적 이익보호를 위한 장치로, 개인을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님과 순siri는 형식적 법치주의마저 유린하였습니다. 그런 사실을 개·돼지과에 속하는 저는 정말 몰랐으니 얼마나 아둔한 사람입니까. 개·돼지 아닌 분들은 다 알고 있었던 대통령님의 국헌문란 행위였는데 말입니다.


대통령님과 청와대 참모들이 집단으로 나서서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돈을 챙긴 행위가 범죄단체와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데도 대통령님은 독야청청인 듯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는 지시를 어떻게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런 두툼한 배짱이 무엇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5%를 제외한 전 국민이 분노하고, 1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광장에 모여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데도 대통령님께서는 헌정 중단은 안 된다고 하시면서 국민에게 선전포고하시는 오만한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그렇게 배짱을 튕길 수 있는 이유는 임기 중 형사소추 불가능이라는 최강의 ‘헌법 방패’로 보입니다. 모든 것을 막아 낼 수 있는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 슈퍼 히어로 같은 방패를 갖고 계시고, 우주의 기운이 넘치시니 무서울 게 없으시다는 자신감입니다. 하기야 오죽하면, JP께서 “5000만 국민이 내려오라 해도 안 내려올 것”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대통령의 실질적인 2선 후퇴나 하야는 군 통수권 등 국가원수에게 부여된 권한을 양보·포기하는 것으로 반 헌법적이고, 헌정 중단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은 최고의 헌법제정권력이기 때문에 헌법의 제정·개정에 참여할 뿐 아니라 헌법전에 포함되지 아니한 헌법 사항을 필요에 따라 직접 형성할 수 있다.’고 판시한 사실도 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 주권자이기 때문에 헌법을 제정할 수도 있고, 심지어 헌법을 폐지할 수도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헌법 원칙입니다.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헌법 정신에 다 포함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법치주의를 유린한 대통령님의 2선 후퇴나 하야는 헌법제정권력인 국민 앞에서는 반헌법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헌법질서에 부응하는 행위입니다.


주인이 잠시 빌려준 것을 되찾아 오겠다는 것이 어찌하여 반헌법적입니까. 유린된 헌정질서를 다시 세우자는 국민의 함성이 왜 초헌법적인 여론 몰이입니까. 4·19 혁명과 6월 민주항쟁 등의 역사가 이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통령께서 비장의 카드로 움켜쥐고 있는 ‘헌법 방패’도 결코 ‘만능 방패’가 아니며, 헌법제정권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헌정 중단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헌법은 헌정 중단을 이미 예정하고, 대비하고 있습니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대통령 탄핵제도, 대통령 궐위 등에 대한 대비조항 등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헌정 중단 역시 헌법에서 정하고 있기 때문에 헌정 중단 때문에 하야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학자들은 헌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헌법 정지 뿐만 아니라 헌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헌법 정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헌정 중단이라는 말씀이 옳은 말씀이라 하더라도, 이는 헌법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헌법 회복 과정일 뿐입니다. 대통령 말씀대로라면 헌법과 법치주의가 파괴되었어도 그냥 두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까. 따라서 대통령님 말씀은 어불성설이고 궤변입니다.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 책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대통령님께서 스스로 헌법을 파괴하고 국헌을 문란케 하시고, ‘모든 길은 순siri로 통한다.’는 원칙 아래 헌법 수호 책무도 양도하고 포기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순siri에게 양도·포기하는 것은 합헌이고, 국민에게 양도·포기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하니 저 같은 개·돼지 머리로는 어안이 벙벙합니다.


대통령님의 헌정 중단이라는 무거운 고민과 걱정은 이제 내려 놓으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헌정 중단이라는 무거운 짐은 국민이 현명하게 나누어 해결할 테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국민이 대통령님께 퇴로를 열어 줄 아량이라도 있을 때 스스로 물러나시어 그 좋아하시는 ‘길라임’ 드라마와 연예인을 실컷 보시면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시는 것이 법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진정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이루고,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사회근간을 흔드는 헌법 파괴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이 말도 모두 대통령님 말씀이십니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23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