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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의 정석 (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39
조회
495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고작 한 달 전의 뉴스였다. 새누리-한자로는 新天地-당 대표님의 밀실단식.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국 결말은 “언니 나 여기 있어 잉~. 순시리 언니껀 내가 학실히 막고 있자너 나한테도 눈길 좀 줘여” 아양 떠는 초딩용 유머로 끝났지만. 그분이라고 쪽팔리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언니가 베푸시는 송로버섯에 샥스핀 만찬에 초대받아 포식한 직후니까 다이어트용 단식이라는 비아냥도 미리 짐작 했을 테고 저 냥반 며칠 갈지 우리 내기할까? 나 같은 촌부의 술자리 안주감으로 잘근잘근 씹힐 것도 알았을 것이고 명색이 그럴듯한 완장까지 찬 냥반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쯧쯧~하는 조롱도 극복할 대상이었다는 것을. 그래도 굴하지 않고 국회의장 니가 나가나 내가 죽나 끝까지 해보자는 의지와 패기가 의사당 청색 돔의 피뢰침만큼 삐쭉 솟았으니 가상치 아니한가. “그래 모름지기 마름짓 할라믄 저 정도는 해야지. 신의 없이 제 살길만 찾는 세상에 오랜만에 충성스런 의리를 발견하니 내가 다 흐뭇허구먼.” 적어도 보름은 갈 줄 알았던 그분의 단식이 고작 일주일 만에 정리된 뒤의 내 관전평이었다. 7이라는 단위가 그렇게 허무한 숫자인줄도 그때 처음 알긴 했지만. 괜히 당 대표님 단식만 얘기하면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 같아 뭐 비스므레한 사람 없나 다시 머리를 굴려본다. 그보다 좀 뒤에 유행했던 지금은 퇴직한 경찰총수 님의 말씀도 인상적이다 “코너링이 좋아서” 이걸 허무개그라고 해야 하나. 아재개그라고 해야 하나. 초딩은 잘 못 알아듣고 중딩 정도 되면 “너 듁는다” 정도의 시니컬한 댓글을 얻을만한 명언을 남기신 그분. 그분 역시 쪽 다 파는 일이란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래도 한다. 마치 그분(정확히 누군지는 모름)에 대한 충성이란 말 외에는 아는 단어가 없는 사람처럼.


國民학교때 “召使아저씨”라 불리는 분이 있었다. 학교의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서 하시는데 선생님들께는 꽤 친절하셨던 분이셨다. 다만 그분이 축구부 코치를 맡으면서는 나 같은 후보들조차도 괴로웠던 기억이 있다. 매일 구보에 오리걸음에 어쩌다 빠따질 까지. 그분의 인품은 따뜻했던 것 같은데 유독 훈련 때는 한 성질부리고는 하셨다. 그때는 召使가 무슨 의미인줄 몰랐다. 어제 팟캐스트 녹음하면서 소제목을 “따까리의 비애? 꼬붕의 곤조?” 정도로 정해놓고 선곡을 하다 보니 “惡의 召使”란 일본 애니메이션 OST가 나오는데 번역이 하인이다. 그제서야 국민학교때 잠시 품었던 용어에 대한 해답을 얻다니.


“너 이** 한따까리 할래?”는 “당신 내 밑에서 한번 박박 기어보실래요?”의 다른 표현이다.


따까리. 어느 조직의 밑바닥에서 하찮은 일 도맡아 하는 하찮아도 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꼬붕이 있다. 앞서 얘기한 마름 짓도 딱히 다를 건 없다. 천석지기 만석지기 지주의 오른팔이 되어 소작인을 관리한다는 꽤 쓸 만한 완장을 두르고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특징이 있다. 모셔야할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높여줄 존재가 주인임을 명확히 알기에 주인 앞에선 생목숨 바칠 듯이 생색내며 같은 류의 따까리들은 생까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자리가 쪼끔 높아지면 또 특징이 생긴다. 자기 아랫것들은 처참하리만큼 짓밟는 다는 것. 질문하다 말 막히면 무조건 “사퇴하세욧” 외치는 수준은 봐 줄만 한 것이고 304명의 산목숨이 사라져간 바다를 조롱하며 선체의 인양을 반대 한다 물대포로는 골절이 안 되니 부검을 강행해야 한다, 따위의 비인간적 언사를 스스럼없이 내뱉기도 하고 “너 나 누군지 몰라?” 한마디로 한 가장의 밥줄을 끊거나 한 인생을 나락에 빠트리기도 한다. 행세하는 한줌 권력을 국민여러분이 주셨다고 말로는 떠들지만 실제로 그리 여기는 마름은 없다. 제 나와바리에서는 다들 지가 좀 먹어준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봤자 召使 나부랭이들이다. 순실 씨 얘기로 나라밖까지 술렁인다. 너무도 지독한 마름을 곁에 두었다고 그네 씨에게 울화통 터트리는 분들도 꽤 계시나 순실 씨도 그네씨 사람 만들라고 무척 오랜 시간 공들인 것도 같다. 일가에 측근에 그 많은 재산 끌어 모으고 삐딱하게 구는 아랫것들 단칼에 자르고 얼굴 이쁜 놈들 팍팍 밀어줘 출세시키고 그게 다 그네 씨에게 수 십년간 마름짓한 당연한 월급 봉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개성공단은 삐끼놈이 문닫고 일본군 위안부는 호빠놈이 타결하고 세월호는 무당년이 침몰시켰다는 한탄이 온 나라를 요동친다. 바야흐로 마름들의 세상이다. 마름 욕할 것 없다. 걔들은 적어도 자신의 주인이 누군지는 안다. 그러니 그 한 사람을 위해 열심히 마름 짓 한다. 마름의 정석코스를 성실히 수행하는 중이다. 오직 생전 밥 한끼 안 해본듯한, 택시한번 안 타본듯한, 젓가락질은 제대로 하나 몰라 싶은 자신을 여왕이라 생각하는 그네 씨만 모른다. 그 자리를 누가 앉혀놨는지. 11개월이나 정무수석이라는 마름자리에 앉혀놓고도 한 번도 독대를 허락하지 않은 그네께 살짝 귓속말로 속삭여 주고 싶다. “그네 씨가 앉혀놓은 저 마름것들 하는 것 봤지? 주군말이면 찰떡같이 알아듣자너. 그네 씨 그 자리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인 우리가 앉혀놓은 거거든. 저 소리 들려? 얼렁 내려 오라자너. 그네 씨의 주군인 국민들의 말을 들으라고 마름의 정석은 좀 배우라고”


27085509_CHUL4271.jpg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그나저나 기껏 마름짓꺼리나 할라고 머리 터지게 공부해서 그 좋은 대학 나와 유학가 박사 받아 그 짓하지는 않았을 건데 참 그 넘들의 뇌구조도 신기하기도 하다. 역사가가 제대로 기록한다면 결국 죄다 召使 인생인데. 셰익스피어의 말 하나 둘러대고 자야겠다 졸립다.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 어느 왕국의 쓸 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1월 2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