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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적대를 넘어 우리 안의 몰이해, 혐오감, 편견을 넘어 (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37
조회
590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요즘 법정에서 북한영화를 재생하여 보는 경우가 잦다. 증거물로 압수한 동영상의 경우 증거조사의 방법은 재생이다. 공소사실에 이적표현물로 나오는 북한영화를 법정에서 재생해서 보는 것은 형사절차에서 보장되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북한영화를 법정에서 재생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충실한 재판을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북한영화에 나오는 주인공과 스토리를 알아야 하겠지만, 영화 제목만 봐도 북한의 지도자를 찬양하는 이적성이 있음이 명백한데 계속 전체를 봐야 하는가 묻는 검사와 판사들을 상대로 북한 창작물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주장은 고급 인력의 시간을 낭비하는 막무가내 주장으로 치부되곤 한다. 어떤 검사는 북한영화의 상세한 내용을 변호인은 잘 알고 있지 않냐며, 잘 알면서 꼭 법정에서 전체 내용을 재생할 필요가 있냐고 한다. 변호인이 아는 게 무슨 상관이냐며 증거조사의 주체인 재판부가 북한영화의 내용을 잘 알도록 하는 것이 재판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요즘 두 세 차례 법정에서 북한 영화를 1시간 30분 정도 재생하여 보고 있다.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인지 디지털 저장매체에 담긴 북한영화의 수량이 수백에서 수천편이 된다. 그 중에서 몇 편을 취사선택하여 이적표현물로 기소하면 좋으련만 검사는 하나도 남김없이 별지 이적표현물 목록까지 만들어 공소장을 만든다. 검사는 기소 내용을 줄일 생각은 않고 증거조사를 대충 하자고 생난리를 피운다. 변호인으로서 단호하게 북한영화 전체 내용의 재생을 요구하고 있다. 검사도 판사도 대충 보고 제대로 스토리 전개도 모른 채 북한영화라는 이유로 그 가운데 북한 지도자를 찬양하는 일부의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기계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양산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의뢰인 중에는 북한영화를 하나하나 꼼꼼히 다 본들 무죄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괜히 판사를 피곤하게 만들어 찍히지 않을까 걱정도 한다. 판사들도 북한영화를 법정에서 재생하여 보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닌지 전부 재생을 하기로 하여 보다가도 계속 이렇게 보아야 되는지를 변호인에게 묻기 일쑤다. 아마 판사도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북한영화를 법정에서 증거조사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마뜩찮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충실한 재판을 위한 원칙을 무기로 북한의 것이라면 무조건 백안시하고 혐오스러워하며 그 내용도 모르면서 뻔 한 내용으로 치부하고 이적표현물로 단죄하는 이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동족 몰이해와 편견의 장벽에 부딪혀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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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MBC


법정에서 북한영화를 재생해 보는 것이 법이 보장하는 원칙임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저항에 부딪히며 재판절차의 원칙을 지키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분단의 두터운 장벽과 우리들의 의식 속에 깊이 드리운 분단체제가 강요하는 적대적 편견을 확인한다. 법정에서 강요당하는 분단적대의 현상은 나열할 수조차 없이 많다. 국정원이 뒷돈을 주고 나온 탈북자 증인조차 신원노출 우려와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신변안전 위험 등을 이유로 비공개 비밀재판에 서게 하거나, 피고인과 대면 금지를 위한 차폐막 설치 등을 검사가 주장하면 위축된 법원은 일사천리로 따르고, 변호인이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법절차의 보장을 주장하며 아무리 이의제기를 하여도 재판은 막무가내로 진행된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탈북자들이 종편에 당당히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북한에 대한 온갖 혐오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의 이율배반적 모습이다.


분단적대의 혐오감과 편견을 극복하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활동을 우리 삶의 곳곳에서 진행하여야 함에도 법정에서 북한영화를 재생하기가 힘든 것처럼 북한 바로 알기는 우리의 인식과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우리는 무관심과 회피 지대로 도피하거나, 북한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북한을 악마화하는 극우보수세력이 쳐놓은 덫과도 같은 장막 안에서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지적 향유와 정보 수용의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고 막아버린 채 아무런 문제의식조차 없이 분단정신병 환자로 병명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우리의 분단정신병 치료를 위한 북한 바로 알기 노력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종북몰이 정권이 북한 체제가 국제공조 속 압박과 제재로 북한 고위층의 탈북러시가 이루어진 양 선동하며 여론을 왜곡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최근 북한 경제가 나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고 스스로 정보를 수용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우리가 같이 협력할 방도를 고민하며 북한의 정보를 찾아나가면 한국 경제 발전의 활로와 통일경제의 비전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능동적으로 북한을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는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의 도발 때문인가? 미국을 추종하여 북한을 적대하며, 사드를 배치하고, 더 자주, 더 많은 미군 무력을 동원하여 한미군사훈련을 진행하며 국제적 제재와 압력을 더 강하게 하면서 군사적 긴장과 남북대결의 위기를 자초해 나가면 북한이 자멸하고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인가? 북한에 물난리가 나서 국제기구의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인도주의적 지원조차 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북한은 줄곧 미국과 평화협정체결을 주장해 왔다. 미국은 북한의 남침 위협을 이유로 미군을 주둔시키며 북한의 위와 같은 주장은 위장 평화공세로 치부해 왔다. 분단적대의 군사적 대결상태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의 길로 나아가고, 군사훈련과 핵실험 등의 긴장조성행위를 중단하고, 평화협정체결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길로 나가야 하는 것이 적대 쌍방이 추구해야 할 길임이 명백하다.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북한의 상투적 공세로 규정하면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북한의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북한의 주장이라면 듣지도 보지도 않고 거부하는데 익숙한 우리의 모습에서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후손들의 안전과 행복의 길은 요원하다. 분단적대의 장벽에서 탈주하기 위한 다른 대안과 길을 만들어나가지 못하는 것은, 분단적대의 정전체제에서 외국군대가 주둔한 현실과 민족 쌍방이 적대하며 대결하기를 강요하는 국가보안법 체제에 질식된 우리들의 편협한 사고와 인식에 기인한다. 비정상적, 기형적 인식을 갖고도 현실의 모순을 자각하기는커녕 분단체제가 강요하는 논리에 세뇌당하고 겁박당한 채 이식된 비정상적 인식상태를 자기합리화하며 이성적이고 정상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일쑤다. 북한을 그대로 이해, 존중하고 남과 북이 현재의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관계를 개선하여 통일의 길로 나아가며, 무엇보다도 우리 안의 몰이해와 혐오감 및 편견을 없애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분단 비극 극복의 실천이라 생각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10월 19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