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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새누리당 대선 후보 어때요 (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20 11:35
조회
512

-ㅈ일보 ㅎ형에게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형, 잘 지내죠? 얼굴 본 지 벌써 1년이 넘었네요. 곧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정리된 생각을 먼저 전달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형,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시청 부근에서 소주 마실 때 생각나요? 그때 형은 여권에 대선 후보로 나설만한 사람이 안 보인다고 했죠. 나는 반기문이 있지 않냐, 새누리당이 반기문을 후보로 옹립하게 될 거, 라고 말했죠. 그때 형은 그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미로워했죠. 그러고 나서 몇 달 있다가 반기문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기정사실화된 상태입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될지 맞히는 데는 나름 신통력이 있나봐 ㅎㅎ 노무현이 해양수산부 장관할 때니까, 대선 후보로 거론도 되지 않을 때인데, 민주당 보좌관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내가 노무현 대선 후보 어떠냐고 말했거든. 그때 이 양반들이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더라구. 한마디로 ‘깜’이 아니라는 얘기였지. 그런데 1년인가 지나서 노무현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죠.


뭐 내가 돗자리 깔고 나앉겠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별다른 비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때그때 시대정신을 읽으려고 노력하면 후보가 보이더군요. 아 그렇다고 반기문이 시대정신에 맞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새누리당은 좀 다르거든. 새누리당은 철저하게 당선 가능성으로 후보를 고르죠.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요즘 안철수 새누리당 후보는 어떨지 상상해보고 있어요. 사실 요즘이 아니라 안철수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을 때부터니까 아홉 달 전부터라고 해야겠네요. 안철수에 대한 내 생각은 예전에 몇 차례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래요. ‘안철수는 보수적인 사람이고 보수정당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어울리지 않는 야당 정치인이 돼서 저렇게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이에요. ‘야당 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 개인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에요.


안철수의 등판 시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선적·사기적 리더십에 대한 반발로 국민들은 합리적이고 정직한 인물을 원했고, 안철수는 그런 국민적 열망에 부합하는 인물이었죠. 안철수의 정치 참여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한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대선 후보로 출마하면서 내놓은 공약은 이른바 진보적 테제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아요. 안철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엘리트로서 정직과 교양, 겸손함까지 갖춘 훌륭한 민주 시민이지만 이 나라의 근본적인 갈등을 혁신적으로 풀어낼 수가 없어요. 그러기엔 자기가 가진 게 너무 많아요.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어정쩡한 스탠스를 거듭하자 인기 거품이 사라졌고, 결국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어 고민에 빠진 호남 정치인들과 손을 잡기에 이른 거죠. 요컨대 안철수의 정치적 우유부단함은 지금 입고 있는 정치적 의복이 맞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체형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특유의 우유부단함을 상당 부분 고칠 수 있을 거예요.


00500576_20160627.JPG사진 출처 - 한겨레


자, 이제 안철수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면 우리나라에 뭐가 좋은지 이야기할 차례네요. 사실 지금부터가 내가 오늘 형에게 말하려는 핵심이에요.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 대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들 하잖아요. 나는 그걸 ‘함몰된 운동장’이라고 고쳐 부르고 싶어요. 기울어진 건 맞는데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게 아니라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오른쪽에 엄청나게 큰 구멍이 있는 거예요. 그 구멍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벼워진 오른쪽이 들려있는 거죠. 왼쪽 운동장 선수들이 오른쪽을 공격하려고 해도 경사가 높아서 일단 기어오르기도 어려워요. 어렵사리 하프라인을 넘어 공격을 한다고 해도 거의 모든 볼을 이 구멍이 삼켜버리죠. 그 구멍의 이름은 ‘도덕성’ 혹은 ‘정직’입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밀실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데, 이 양반이 2년 전에는 국회의원이 단식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거라고 말했죠. 참여정부 당시 농민들이 경찰 진압과정에서 사망했을 때는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정현입니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처지에 따라 말을 180도 바꾸는데 능하다는 거죠. 비슷한 예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려면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아플 지경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나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자기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고 주류라는 자의식에서 오는 자신감입니다. 아무리 개판을 쳐도 손해 볼 게 없기 때문이죠. 반면에 야당은 명백한 대선부정개입 사건에도 불구하고 선거무효소송조차 제기하지 못합니다. 사법부조차 권력에 장악돼 있는 상황에서 꼴만 우스워지고 역풍을 초래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균형 현상은 어느 조직에서나 흔히 나타나는 인간사회의 한 특징이에요. 예를 들어 여성, 흑인, 장애인, 동성애자들이 남성, 백인, 비장애인, 이성애자보다 자기검열이 심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두 번째 해석은 이 사람들이 전두엽이 활성화되지 않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인간들. 우병우나 황교안 등 이 정권 고위 인사들 뿐 아니라, 이정현이나 김무성, 윤상현 등 새누리당 인사들의 행동 패턴을 보면 사이코패스의 정의와 신기할 정도로 맞아떨어집니다. 문제는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합리적 토론이나 개선이 불가능하죠. 새누리당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누가 이런 후진적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요. 이재오나 김문수 같은 출세형 변절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원희룡이나 남경필 등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군들도 그거 못합니다. 그들은 수십 년씩 새누리당(한나라당)에서 정치하면서 그 체제에 안주해 왔습니다. 가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건 일종의 부재증명에 불과하죠.


하지만 안철수는 할 수 있어요. 안철수는 박근혜보다는 이명박에 가까운 유형입니다. 자기 콘텐츠가 있고 CEO 출신으로서 집행력이 있지요. 비록 진보적 어젠다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안철수 정도의 합리성이면 우리 사회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재벌 위주의 경제체제가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있는 한국경제 난맥상에도 일정한 변화가 올 수 있을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안철수는 야당으로는 안 됩니다. 될 수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된다 해도 성공적 대통령이 되기 어려워요. 진보적 개혁을 바라는 지지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아 반기문은 어떠냐고요? 반기문이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되고 만약 대통령까지 된다면 박근혜 정권이 5년 연장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해요. 반기문은 콘텐츠 없이 이미지만 존재하는 박근혜와 판박이거든요. 대한민국 보수가 일치단결해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건 자기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잖아요. 유능한 대통령이 아니라 무능하더라도 우리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사람이면 되는 거였죠. 반기문은 전형적인 ‘바지 사장’ 스타일이에요. 그런 점에서 지금 보수의 요구에 가장 적합한 인물입니다. 유엔에서조차 ‘투명인간’이란 별명을 얻은 사람이 각종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고 싶지도 않을 거구요.


내가 형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논조가 정반대인 신문사에 다니는 형을 계속 만나는 이유와 같아요. 형은 여전히 합리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거든. 몸은 21세기에 있지만 마음만은 70년대를 사는 유체이탈 대통령 덕분에 보수 진영 내에서조차 형처럼 합리적 사고를 하는 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런 분들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당이 변하면 많은 게 변할 거고, 비로소 우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예요. 만약 참여정부 때 김영란법을 시행하려고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라 전체가 난리가 났을 겁니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거구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모두들 숨죽이고 어찌 될까 눈치만 봐요. 이게 주류의 힘이죠. 새누리당이 정말 장기집권을 꿈꾼다면, 그러면서도 우리나라가 앞으로 한발짝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이런 방식으로 개혁을 접목해야 합니다. 형이 다니는 회사나 새누리당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해요.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열릴 거예요.


정치공학 얘기 하나만 더하면, 나는 안철수가 진정한 정치9단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영남이 아니라 호남에 판을 깐 게 한 수가 아니라 두 수 앞을 내다본 포석 아니냐는 거죠. 안철수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역대 새누리당 대선 후보 가운데 호남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는 나 같은 바보들은 안철수가 부산 출마를 거부하고 “그건 노무현의 길”이라고 선언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 보면 안철수가 처음부터 ‘동진’이 아닌 ‘서진’ 전략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이 내가 안철수가 ‘기름장어’ 반기문을 제치고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합당을 해야겠죠? 3당 합당도 했는데 2당 합당쯤은 일도 아니죠. 가장 큰 난관은 반기문을 통해 퇴임 이후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박근혜 일파의 견제일 겁니다. 형네 신문사가 청와대와 맞장 뜨려했던 이유도 이거 아니었나요? ‘이미 민심이 떠난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 정권재창출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당장은 서슬이 무서워 숨죽일 수밖에 없겠지만, 레임덕이 더 깊어지면 반격이 가능할 거예요.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질문이나 반론은 술 한 잔 사면 받을게요 ㅎㅎ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글은 2016년 9월 28일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 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