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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눈물은 왜 짠가(최낙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4-19 14:56
조회
1204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갱년기가 온 것일까요?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툭하면 마음이 울컥하는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걸 알고 나서 콧등이 찡해질 때마다 참아보려 애쓰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눈물이 많아지면 눈물이 점점 싱거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 일요일, 세느 강에서


 “오랜만에 세느 강변에나 나가볼까?”


 지난 일요일, 아내가 지금 한창인 벚꽃 구경을 하러 가자고 재촉했습니다. 저희는 집 근처에 흐르는 작은 하천을 그냥 싱거운 우스갯소리로 ‘세느 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느 강’을 경계로 한쪽은 제가 살고 있는 oo구(區), 다른 한쪽은 ㅁㅁ구로 행정구역이 나뉩니다.


 비록 도시 변두리의 그만그만한 하천이지만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있어 휴일이면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듭니다.


  4월 중순, 세느 강에 나가 보니 벚꽃은 그야말로 만발입니다. 아내는 넋이 나간 듯 눈부신 꽃송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한 꽃들에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다가 울컥! 갑자기 콧등이 찡해졌습니다. 부랴부랴 아내가 알아차릴까 봐 가슴을 꾹 눌러 겨우 눈물을 참고 있는데, 아내가 불만스럽게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oo구청장 이 사람, 안 되겠네.”


 꽃구경에 취해 있던 아내의 뜬금없는 소리에 눈물이 쏙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아내의 태세 전환에 깜짝 놀라 묻자, 아내는 우리가 서 있던 개천 건너편, oo구의 천변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가만 보니 우리가 서 있는 ㅁㅁ구 쪽의 천변에만 꽃이 만발입니다. 겨울에는 잘 몰랐었지만 이렇게 꽃이 피고 나니 oo구에서 관리하는 천변과 ㅁㅁ구에 속한 천변의 풍경이 확연히 다릅니다. 꽃나무가 잘 관리된 ㅁㅁ구는 제가 살고 있는 oo구보다 산책로며 운동기구며 주변 환경이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다리를 이쪽저쪽으로 건너다니며 실컷 벚꽃 구경을 하던 아내는 어느새 oo구 주민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래도 간만의 꽃구경이 좋았는지 얼굴에는 오랜 동안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야 말로 찬란한 봄입니다, 눈부신 계절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정말 갱년기 때문일까,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빠졌습니다. 꽃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는 저를 아내가 봤다면 한마디 했을 것 같습니다.


 “주책바가지!”



사진 출처 - 경향신문


#2. 화요일, 파리바게뜨 근처 술집에서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약속된 술자리에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벌써 세 친구들의 얼굴이 불쾌하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술자리 분위기는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술자리에서는 가급적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것이 친구들의 묵시적인 금기였습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어떤 정치적인 뉴스가 나올 때마다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서 “다신 보지 말자”는 말로 헤어지는 일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 아홉시 반 정도 지난 시간, 그런데 벌써 준한 사태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두 친구는 서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등을 돌린 친구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친구가 뒤늦게 자리에 앉은 저를 보고 어떻게 하냐는 듯이 쓴 웃음을 지으며 제게 말했습니다.


 “쟤들 세월호 때문에 한바탕했다.”


 4월 16일, 예상했던 바였습니다. 등을 돌리고 있다가 한 친구가 일어섰습니다. 조그만 음식점을 하는 친구였습니다.


 “미안하다, 나 먼저 간다.”


 말릴 새도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아마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을 친구가 일어서 나갈 때 다른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먼저 너, 다시는 안 봐!”


 술자리는 금세 누가 먼저 입을 떼기가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소 긴 침묵이 이어졌다고 생각되는 때에 ‘다시는 안 보겠다’는 말을 했던 친구가 저를 보며 말을 꺼냈습니다.


 “야, 저 새끼가 어쩌다 저런 놈이 되었냐? 너도 차명진이 같은 새끼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냐?”


 그 말을 하고 있는 친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당황하며 말을 받았습니다.


 “정치 얘기 안 하기로 했었잖아, 근데 오늘 작정하고 나온 것처럼 왜 그랬어?”


 그러자 눈물을 참고 있던 친구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습니다.


 “너도 똑같이 답답한 놈이다. 내가 정치 얘기 했냐? 세월호 얘기 했지.”


 술자리는 어찌어찌 끝나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안 보겠다던 두 친구는 또 다시 보게 되겠지요. 늘 그래왔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저였습니다.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친구가 말했던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서였을까요?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이 났던 것은 아마 며칠 전 보았던 그 눈부신 꽃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정말 ‘주책바가지’가 되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