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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자(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9-03-13 11:31
조회
1346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남이란 말이 있다. 한국남자의 줄임말이면서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화와 사고’를 가진 한국의 남자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다. 이 말에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하다. 누구든 혐오 표현에 불쾌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지난 연말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한국, 남자>라는 책을 홍보하며 ‘어쩌면 그렇게 한(국)남(자)스럽니’라는 제목의 이메일 광고를 내보냈을 때 많은 남자들이 자신을 ‘한남’ 취급하는 데 항의하며 회원 탈퇴했던 소동이 있었다. 이 소동은 예스24 측이 사과문을 게재하는 걸로 마무리되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와 한남 담론이 얼마나 예민한 주제인지를 보여준 사건이라 할 만하다.


 많은 남자들이 ‘한남’이라는 말에 불쾌감과 억울함을 토로한다. 하지만 오래 동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수많은 ‘...녀, ...년’으로 비하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왔다. 남성혐오의 언어로 한남이 등장한 건 최근이지만 지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여성혐오의 언어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쓰여온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여성혐오의 주체는 물론 남성이다. 최태섭의 책 <한국, 남자>는 이른바 한남을 조롱하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의 남성성, 남성문화가 형성되고 변화해 온 역사를 통해 지금 한국 남자들이 ‘한남’이라는 단어 앞에서 느끼는 불쾌감과 모멸감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는 사회학적 연구서에 가깝다. 최태섭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착취와 소외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다양한 책과 글을 써온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잉여 사회> 등 저자가 낸 책들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청년세대의 문제가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 존재하는지를 청년세대 자신의 시선으로 분석한 책들로 주목받은 바 있다. <한국, 남자>는 저자 최태섭이 지금까지 천착해 온 한국사회의 젊은 세대가 처해 있는 현실, 불안과 좌절의 의미에 대한 일련의 연구 작업의 연장에 있다.



사진 출처 - yes24


 이른바 남성성의 문제, 혹은 위기는 단지 한국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인구문제,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 등 사회적 혹은 문화적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여주긴 하지만 지금 ‘보편 인류’였던 남성성이 크게 도전받고 있는 양상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 속에서 한국의 남성성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변화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 전쟁과 군부독재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시대의 장기 불황에 이르는 동안 ‘남성’이 어떻게 규정되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다양한 자료를 동원해 분석한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남성성의 맥락에서 새롭게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젠더 갈등이 어떤 연원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남자 자신도 잘 모르고 있던 남자, 혹은 남성성에 대해 객관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남자인 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환기하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젠더 갈등은 오래 동안 젠더 권력을 누려온 남성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충분히 사유하지 않으면 풀리기 어렵다. 이 책에서 그려내는 남성성의 역사를 보면 남성성의 권력 자체도 사실 국가주의와 자본주의의 체제 속에서 구조적으로 호출되고 이용되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남성 권력은 사실 권력이 아니라 굴레이고 억압이었으며 지금 한국의 남성들이 겪고 있는 곤란함이 여성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른바 젠더 갈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주체로, 또 타인과 연대하고 돌보는 자로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은 그런 사유의 한 실마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