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외로움의 이념적 뿌리(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8-10-31 16:25
조회
1255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얼마 전 티브이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한 사기꾼의 수법을 보며 인간의 생리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여러 교회를 동시에 다니며 명함을 뿌렸고, 성경 공부를 하자고 접근했다. 일단 개인적인 만남이 이뤄지면 고민을 들어주고 자기 일처럼 아파했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낚이는 대목은 함께 기도하며 울어주는 순간이었다. 부모자식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데 생판 남인 사람이 나의 내면을 이해해주고 같이 울어주니 감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신뢰를 확보한 사기꾼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무조건 복종을 강요했다. 돈을 요구하고 때리기까지 했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기꾼은 피해자들에게 갈취한 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며 잘 살았다고 한다. 마침내 맞아죽은 피해자-학교 선생님이었다-가 생기고 나서야 그 마각이 세상에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 중엔 사기꾼의 학교 동창도 있었다.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던 그는 같이 울어주던 친구의 노예가 되었다. 돈을 갖다 바치고 사기꾼의 집에 가서 허드렛일을 했다. 친구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떠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는 ‘그래도 이 친구만이 내 편이다, 이 친구를 따라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기가 막힌 사기담인데, 비결은 단순하다. 외로운 사람 곁에 함께 있어주기(연대)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질수록 더 외로워지는 현상은 현대 자본주의가 가져온 질병 같은 것이다. 가족과 공동체는 파편화하고 모든 사회적 관계는 돈으로 환산된다. 사실 나는 외로움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슬기롭게 즐길 수 있도록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누군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주 만나는 사이라면 더욱 좋다. 인간은 좋은 공동체-가족이나 친구, 지역사회, 동창회, 동호회, 교회 등 각종 모임-에 속해 있을 때 외로움을 덜 느낀다. 무릇 좋은 사회라면 사람들이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완화하고 공동체와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영국 정부가 지난 1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정책이 성공하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많다. 그동안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사회적 연대를 깨는 데 주력해 온 집권 보수당의 정책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최근 보수당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외로움 담당 장관 트레이시 크라우치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외로움 담당 장관직을 신설한) 보수당이 집권한 2010년 이후 수백 개의 공공도서관과 아동복지센터들(Sure Start Centers)이 문을 닫았다”고 지적했다. 외로움을 달래줄 커뮤니티(공동체)를 파괴해 놓고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하면 뭐하나, 라는 힐난으로 나는 읽었다. 경제발전과 기업실적 향상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우파적 세계관은 인간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소외 현상’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다. 에리히 프롬 식으로 말하면, 소유에 집착할수록 존재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진 출처 - KBS


 ‘외로움 정책’을 처음 제안했던 사람은 노동당 소속 의원 조 콕스다. 그는 2016년 6월 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 직전  “브리튼 퍼스트”를 외친 한 외로운 극우파에 의해 살해당했다. 브렉시트 선거 과정에서 극우파들이 난민과 유럽연합에 관한 각종 가짜뉴스를 양산하며 혐오를 증폭시켰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의 죽음을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살인자는 조 콕스를 “유럽연합의 부역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최근 미국의 피츠버그 유대교 회당 대량 학살도 외로운 백인 극우파의 소행이었다.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반트럼프 인사들에게 사제 폭발물을 보낸 범인도 경제적으로 파산한 채 승합차(밴)에서 홀로 지내던 트럼프 지지자였다. 대통령 선거 이후 꾸준히 혐오와 편견을 부추겼던 트럼프 효과가 뒤늦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닐까. 난민과 자유무역이 사라지면 이들은 부유해질 수 있을까. 사회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올해도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뒹구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를 보며, 문득, 외로움의 이념적 뿌리에 대해 생각했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