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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한 오해와 깨달음 (김 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6:36
조회
864
대학에서 인권관련 교양과목을 강의하는 나는 강의 첫 시간에는 늘 학생들에게 우리가 인권에 대해 흔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 이번 한 학기가 지난 후에 아마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잘못된 이해 내지 오해들이란, 예를 들면, “인권타령은 70년대, 80년대 민주화 투쟁 때나 필요했던 것이지 지금 이 시대에 무슨 인권타령이냐?,” “국가보안법은 운동권 학생들에게나 문제 되는 것이지 나 같이 법 잘 지키고 죄 안 짓고 사는 선량한 시민들과는 무관한 것이다,”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이 먼저 갖추어진 후에야 비로소 인권을 언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교회가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개입을 하는 것은 교회의 본분을 넘어서는 것 아닌가?” 그리고, “과거 시절에 무장공비가 출현했을 당시 그를 체포하여 공개처형을 방불케 처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었나?” “딴 나라의 인권문제는 그 나라의 문제일 뿐이며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 그리고, “인권은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권리만 너무 강조하는 건 아닌가?” 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독재정권에 의해 침해되던 인권을 지금 우리는 누리고 있지만 인권문제는 축소된 것이 아니라 더욱 확장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에 의해 우리 국민 모두는 자기검열 및 사상검열에 알게 모르게 이미 익숙해졌다는 사실,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은 인권이라는 목적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가치에 불과하다는 사실, 성서에 담겨있는 ‘하느님 나라’, 이웃에 대한 사랑 및 정의에 대한 가르침의 핵심이 인권이라는 사실, 즉, 성서는 하나의 인권교재이기도 하다는 사실, 무장공비에게도 인권이 있기에 적어도 그는 죄수복으로라도 옷을 갈아입고 재판을 기다리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까지는 아니라도 사형을 앞두고 스스로를 뒤돌아볼 기회라도 가졌어야 한다는 사실, 더 나아가, 극형을 언도받아야 했던 것은 그 어린 청년이 아니라 그에게 주입되었던 이데올로기와 분단이라는 민족의 원죄였다는 사실, 과거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학살을 경험했던 우리는 더 가까운 과거에 동티모르에서 벌어졌던 학살을 외면하지 말아야 했다는 사실, 그리고, 끝으로, 다른 이들의 인권과 공동체 전체를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나는 인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을 그 학생들이 깨닫게 될 때까지는 사실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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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상의 소그룹 강의에서도, 또 종교단체인 가톨릭 수도단체에서의 특강에서도 이러한 오해들이 발견된다. 청소년 대상으로 ‘세계인권선언’을 중심으로 인권을 강의한 후 어떤 학생이 물은 질문인즉슨, “이렇게 인권의식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게끔 만드는 건 아닌가? 책임질 수 있는가?”이었고, 어느 수도회 수사의 질문은 “성서에서 하느님은 사랑하라고 강조하셨는데, 인권은  싸우라는 것 아닌가? 인권을 주장함보다는 원수라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이 분부하신 것 아닌
가?” 더 하여, 인권단체 주최의 시민 인권교육 강좌를 하면서 성인 시민들의 수강소감을 들어보면, “인권이라 하면 어려운 것이고 나랑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 일상생활 영역에서 인권침해의 피해자 및 가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얘기들을 한다. 청소년들부터 인권이 입에, 몸에, 그리고 가슴에 베어야  그들이 살아갈, 그리고 그들이 책임질 장래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사실, 굶는 이들에게 매번 가져다주는 자선도 중요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굶지 않을 권리, 일할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주장하도록 일깨워주고 힘을 실어주는 일도 분명 커다란 사랑이라는 사실, 악한 이들에게 그들의 악함을 그들 스스로가 깨닫도록 해주는 일도 그들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등도 깨닫기가 어렵지는 않다.

인권강의는 그런 분명한 깨달음을 주는 일이며, 깨달음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어쩌면, 인권강의를 하는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 즉,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는 인권교육을 제대로 받아볼 기회가 없었기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교육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사실 인권교육에 별 관심도 없는 것 같다”라는 생각도 맞는 말이면서도 혹시 오해는 아닐까?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가 내게 던진 말인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하면 안 되지요”라는 말 속에, 그리고, 바쁘고 피곤하기 마련인 평일 저녁에 인권강좌를 들으려 모이는 시민들을 보며 나는 내 오해에 대해 돌이켜보며 동시에 인권교육은, 인권운동은, 그리고 인권의 실현은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라고 다시금 깨닫게 된다.

끝으로, 정치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정치학자들이라면 인권에 대해 당연히 고민해보았고 공부도 많이 했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인권” 운운 하는 모든 정치인들은 당연히 인권에 대해 나름대로 올바른 일가견을 갖고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도 또 하나의 오해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적어도 정치 공동체의 올바른 형태, 그 안에서의 올바른 분배와 올바른 행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면,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이 정치”임을 잊지 않는 정치인들이라면, 그리고, 적어도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헛된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분명 그들은 궁극적으로는 인권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또 하나의 오해는 아닐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근 60년, 독재정권이 무너진 87년 6월항쟁 이후에만도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으면서도 정작 우리는 우리에게 인권에 대해 배울 권리가 있음을, 그리고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인권 가운데 하나임을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권에 대한 오해에 의해 뒷받침 되던 인권 침해의 권력구조와 의식구조를 이제라도 깨달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양학부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