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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는 사람이 아닌가 - 울산건설플랜트노조 가족들을 만나고 (김대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5:49
조회
812
3월 이후 지역 건설업체와의 집단교섭 및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던 울산 건설플랜트의 노조의 파업이 71일 만인 5월 27일 노사정 합의를 통해 일단락 되었다. 그러나 6월 1일 조합원 투표가 찬성으로 결정나더라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겨두게 되었다. 주요 쟁점이었던 사측과의 집단교섭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고, 노조가 이후 합법적인 활동을 약속함으로써 그동안의 파업이 불법적이었음을 시인한 결과가 되었으며 파업과 관련한 민·형사상 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합의 주체인 ‘공동협의회’의 성격이 애매하여 합의사항이 이행되지 않더라도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70여일간의 장기파업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조가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즈음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던 시민사회가 이들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투쟁을 돌이켜 반성하면서 눈 부릅뜨고 합의사항 이행과정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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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 하는 노가다는 사람도 아니랍니까?”

“저희는 더 이상 남편들이 모멸감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는 꿈을 꾸며 올라 왔습니다.”

지난 5월 23일 오전 아주머니 몇 분이 갑자기 사무실로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을 풀어 놓으셨다. 농성 중이거나 구속된 울산 플랜트노조 노동자 가족들이 직접 남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모진 꼴을 겪은 뒤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오신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 목이 메어 안타까움을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이미 새로운 천 년이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전쟁과 착취의 20세기 닮은꼴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터였지만, 민주화를 이루었다며 그 성과물들을 자랑해대는 이 대명천지에 80년대에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노동조건과 기업의 행태에 분노를 진정하기 힘들었고 뒤늦게야 남편들의 작업환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 거리에 나선 부인들의 마음이 읽혀져 괴로웠다.

‘정직원 외 출입금지’ 라는 간판이 달린 식당이나 휴게실, 화장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니 가족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겠지만 현장에서 겪었을 모멸감을 20-30년씩 어떻게든 참아가며 일해야만 했을 노동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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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있잖아요. 약한 자를 위해서 있는게 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게 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하루였어요.” 농담처럼 내뱉곤 하던 말이었는데, 허가를 받은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에서 연행되었다가 나온 한 아주머니가 이야기 끝에 남긴 이 이 한마디가 너무도 절절하게 들렸다.

가족들은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정부에 있음을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근로기준법의 노동보호제도와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 제도를 무력화시켜 버리는 다단계 하도급 체계를 개선할 것과, 화장실과 식당 그리고 휴게실 설치가 요구의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전체 72개 하청업체 중 41개 업체가 교섭 대표단까지 꾸렸다가 돌변하여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검찰과 경찰은 파업 돌입 5일만에 노조 지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며 발빠르게 과잉진압에 나섰으며, 언론까지 가세하여 노조의 폭력성만을 일방적으로 부각하여 보도하는 등 마치 기업과 공권력과 언론이 사전모의라도 한 듯 삼위일체가 되어 대응하는데 어찌 정부가 이에 책임이 없다고 할 것인가. 이미 대표적인 비리부패산업으로 알려져 있는 건설 분야에 어떻게든 그들 모두가 깊이 유착되어 있고, 노조로 인해 그 비리구조가 드러나고 끊어져 나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막노동이라는 단어는 “닥치는 대로 하는 육체노동, 막일, 대수롭지 않은 허드렛일”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라면 울산 건설플랜트 현장의 노동자들은 절대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닥치는 대로 하는 성격의 일도 아닐뿐더러 대수롭지 않은 허드렛일은 더구나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결단이 필요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역군들이다.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노가다’가 아니라 이 사회와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하는 일을 막노동이라 부르던 허드렛일이라 부르던, 그들을 노가다라고 부르던 노동자라 부르던 그들이 주인이다. 부디 울산 건설플랜트 노조의 노동자들이 누군가의 도움으로가 아니라 스스로가 주인임을 깨닫고 이 땅의 주인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앞으로 상황이 어찌 진행되던 안주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 바란다.

 

김대원 위원은 현재 성공회 서울교구 신부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