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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노동자의 고통 (허윤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5:17
조회
646
여의도 성모병원의 718, 719호실은 특별한 사람들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목숨을 바친 광산노동자들이 진폐증을 치료받는 자리입니다. 전국적으로 5, 6만 여명의 진폐환자들이 있고, 입원 환자만 3천 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이들의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은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의 관심사에서 본의 아니게 밀려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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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의 제도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의료수가가 낮고 장기간에 걸친 입원 치료가 필요하기에 병원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의료인력의 확충이 어려운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성모병원은 1963년부터 40여 년 동안 묵묵히 이런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6개의 진폐요양기관이 있지만, 여의도 성모병원이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서 최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병원입니다. 현재 진폐환자들의 연령이 고령(70세 이상)인 데다가 진폐는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이기에 시간이 흐르면 그 끝은 죽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환자와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어쩌면 찌푸리기라도 잡을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몸부림입니다. 그러기에 여의도 성모병원의 진폐병동 유지는 병원의 수익성 유무를 넘어선 진정한 사회봉사요 마지막까지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삶에 위로가 되셨던 그리스도의 ‘약한 자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참모습입니다.

지금은 사양산업이지만, 60-80년대에 우리는 땅속 깊은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한 광부들의 노고 덕분에 따스함을 입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줄 알면서도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많은 이들 덕분에 우리는 생활의 윤택함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힘든 불치병을 얻은 5, 6만 여명의 환자들은 인간생활의 윤택함을 누리지 못하고 병고와 싸우고 있습니다. 문제는 진폐가 환자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병의 치료를 위해 가정의 전 재산이 쓰여졌고, 따로 간병인을 쓸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아내가 환자인 남편 곁에서 24시간 간호하고 있기에 경제적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여분도 없는 막다른 가정도 상당수 있습니다. 비록 배운 것이 많지 않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식구 잘 먹이고 잘 입히려고 온 몸을 굴속에 던져 열심히 땀방울을 흘렸건만, 남은 것은 병든 몸뚱이요 너무도 오랜 시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정신적, 경제적 고달픔을 안겨주고 있으니,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도 끈질기게 붙어 있는 생명 줄이 환자들에게는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더욱이 시간의 흐름과 효율적인 기계문명의 발전 속에서 이들의 피맺힌 절규와 아픔도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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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막장체험을 하고 있는 사진



 천주교회는 병원사목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사목위원회를 통해 80년대부터 이들을 위한 사목을 시작하였습니다. 진폐환자들과 진폐로 숨진 이들의 가족을 위해 보상금을 마련해 주었고, 현재는 담당 신부와 상담전문 수녀의 파견과 자원봉사자들을 양성하여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으며, 광산노조 및 그 가족들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환자들의 보다 질적인 치료와 인권보호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과 경기지역에 산재해 있는 재가진폐환자가정을 방문하여 그분들이 처한 다양한 어려운 현실 안에서 당면한 구체적인 도움의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외로움에 지치고 육체적인 고달픔에 지친 환자와 보호자들의 대화상대가 되어주며, 경제적 궁핍이 심한 가정에는 매월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에 필요한 재정 확보를 위해 일일찻집을 열고 후원회원을 모집하여 함께 봉사하고자 하는 선의의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로서 첫째는 지속적으로 상담 자원봉사자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자원봉사활동으로 말미암아 환자들이 탄광에서의 체험과 폐광이후의 삶의 과정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서로의 아픔을 알아주고 이해하며 위로의 장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환자들에게 힘을 주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둘째는 선의의 의료진을 확보하여 재가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재가진폐환자란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진폐환자로서 진폐로 인해 장해등급은 받았으나 진폐법이 인정하고 있는 요건에 해당되지 않아서 입원이 안 되는 환자입니다. 그래서 휴업급여와 요양치료에서도 제외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을 위한 자원의료봉사자들의 확보와 가정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가족과 함께 환자의 간병을 도와 줄 자원 간병인 봉사자들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셋째는 진폐환자의 치료와 요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병원들이 수익성의 저하를 이유로 진폐병동을 폐쇄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기관에 보다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요청하는 것과 이들이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넷째는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궁핍이라는 이중의 삶의 무게를 힘겹게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사회의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많은 후원자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는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있는 영신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직자, 수도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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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성모병원에서 진폐환자를 간호하고 계시는 세실리아 수녀님



 매년 ‘노동자의 날’을 맞이하면 다양한 노동현장에서 어려움과 아픔을 안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만, 안타까운 것은 몇몇 단체의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묵묵히 가난한 진폐환자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여의도성모병원 관계자와 의사분들, 여러 요양원에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많은 이들의 노고를 보며 감사함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도 같은 일이지만, 그 노고에 누구도 찬사를 보내는 이 없지만, 환자와 가족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수많은 작은 노동자들의 수고를 잊지 말고, 이 약한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새로운 산업의 분위기 속에서 다시는 이런 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업관계자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지고 노동자들의 희망도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허윤진 위원은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