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발자국통신

‘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껍데기는 가라 - 국적 포기 사태를 보며 (이창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5:41
조회
551
이중국적자들이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한국 국적을 버리는 것을 제한하는 국적법 개정안이 지난 4일 국회를 통과했다.

6월초부터 개정법이 시행되면, 병역 의무를 다하기 전에는 한국 국적을 자유롭게 포기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개정법 시행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매일 백여 명씩 국적 포기를 신청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병역 의무를 피하기 위해 국적 포기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050518bal.jpg

 

이제까지는 이중 국적을 가진 남성이 모든 면에서 한국인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살다가, 17세 이전에만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재외동포’가 되면 병역 의무를 회피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추가적인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국내 체류기간 한정, 대학 입학 때 재외동포 특례입학과 편입 대상에서 제외, 부동산 취득 제한, 금융거래 제한, 건강보험 적용대상 제외 등을 통해서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버린 사람들이 내국인과 같은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막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병역 기피를 위한 국적포기자는 차후에도 국적회복을 불허하고. 재외동포법상의 모든 권리와 자격을 박탈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라고 한다.

뉴스가 전하는 여론은 새로운 국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쪽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한민국 ‘남자’ 국민이라면 누구나 짊어져야하는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중국적을 이용하는 계층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속지주의를 채택한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 국적을 얻고, 또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얻은 ‘운좋은’ 어떤 남성이 한국에서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는 한국의 사회적인 혜택을 누리다가, 군대갈 나이가 되어서야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서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일반 국민들로서는 ‘많이 손해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상당히 여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혜택만 받고 의무는 짊어지지 않으려는 일부 얌체족에 대한 질타는 당연하다(한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그들이’ 혜택으로 여기는지는 모르지만). 그런데, 한편으로는 법이라는 것이 이렇게 특정한 소수의 사람들을 꼭 집어서 주류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논리를 가지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수많은 재외국민, 동포들이 온 세계에 널리 퍼져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이러한 법이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중국적을 얻게 된 사람들의 처지를 포용할 수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한번 국적을 포기하게 되면 다시는 한국 국적을 회복할 수 없고, 재외동포로서의 자격까지 잃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경직된 법적용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이런 일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언급된다.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명예로 여겼던 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은 서구에서는 기득권층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가해서 목숨을 잃은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 없는 일반 국민들은 훨씬 더 많은 수가 희생을 당했다. 강제징집을 당해서 전쟁에 참여하거나, 군인도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이유도 없이 죽어간 일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사유재산과 그들이 가진 사회적 기반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참전한 기득권층의 ‘이유 있는’ 용기를 칭찬하기 보다는, 저항하지 못하고 전쟁 속에서 죽어간 민간인들이 희생되어야 했던 필연성을 따져보아야 하며,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던가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니라, 전쟁에 대한 반대가 우리의 구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일을 보고 한 원로 소설가는 군대에서 음식쓰레기통에 버려진 음식을 먹고, 드럼통에 얼굴을 처박는 혹독한 기합을 받았던 일을 자랑스럽게 추억하면서, ‘그 모두가 사람 되라고 받은 훈육과 기합’이었다고 감격스럽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군대가 이렇게 추억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군복무를 할 수 있을 때, 군대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기꺼이 국방의 의무를 준수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끝으로,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를 몰아내는 좋은 방법은, 이런 저런 수단으로 껍데기를 분간해내서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감으로써, 기득권에 매달려 체면도 없이 이기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껍데기를 골라 버리는 방법이다. 우리가 할 일은 껍데기를 골라내는 데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껍데기가 스스로 부끄러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