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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등급제 사태를 접하며 (홍승권)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5:38
조회
460
내신등급제로 시끌벅적합니다.

고등학생들이 시험 때문에 자살을 하는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급기야 일군의 고등학생들이 시내 한 복판에서 추모 촛불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학부모는 교육부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지금의 입시제도는 학생들에게 입시부담을 1/12로 경감시킨 게 아니라 입시부담을 12배로 가중시키는 결과만 낳았다’며 교육부를 맹성토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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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는 교육부 수장에 어떤 사람이 오건, 제도를 어떻게 고치건 지금의 입시문제가 온전히 해결되기란 어려운 일임을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 중에서 없어도 되는 부처로 손꼽히는 데가 ‘교육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학벌사회를 조장하는 사회시스템의 문제임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터에 사회가 바뀌지 않는 다음에야 제도를 어찌 고치건 입시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고질적인 문제로 우리 앞에 태산처럼 다가설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살건 못 살건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교육비를 엄청 쏟아 붓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라는 것처럼 기득권 및 시스템을 유지 온존시키는 가장 강력한 매개는 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들의 사교육비 지출을 위해 맞벌이는 물론이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짤리지 않고 해야 하며, 허리띠 바짝 졸라매 자녀에 대한 교육투자를 해야 합니다. 저축이니 내 집 마련이니 하는 것들은 후순위로 밀려야 하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나 선생을 통해 주입된 일류대 만능의 이데올로기에 그냥 젖어들어 그 황금기를 온통 공부에 찌들어 지냅니다. 좋아하는 운동을 즐기거나 다양한 독서를 통해 세상의 이치에 대한 생각을 해볼 겨를이나 폭넓은 교양을 쌓을 여유도 갖지 못하고 그저 취직의 관문인 대학에 잘 들어가 사회가 요구하는 기능인이 되기 위하여 귀중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 어떤 때보다 진취적이고 패기와 용기로, 끊임없는 도전의식과 의문부호로 똘똘 뭉쳐있어야 할 나이에 너무 일찍 박제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상태로 자란 아이들에게서 한 사회를 질적으로 한 단계 성숙시킬 만한 상상력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등골이 휘어져라 교육비를 퍼붓고 맹자 어머니 저리가라 할 정도로 10년 이상 온 신경을 곤두세워 자식 교육문제에 골몰해 보아도 서울에 있는 명문대는커녕 전국에 있는 유수의 4년제 대학에 보내는 것조차 하늘의 별따기인 실정입니다.

 

결국 사회에서 출세가 보장된다고 일컬어지는 몇몇 주요 ‘관문’을 통과하는 아이들은 강남 분당권을 비롯한, 이미 어느 정도 선택된 가정의 아이들이 주축을 이루고 강북권 등의 아이들은 졸업해도 취업 여부는 전혀 보장이 안 되는 ‘기타대’들에 가게 되거나 아예 대학 진학의 꿈도 못 이루게 되지요. 물론 그 과정에서 반이 넘는 아이들은 이미 교육과정에서 철저히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구요.

부의 대물림이 교육이라는 수단으로 이제 고착화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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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 상 뻔히 보이는 결과인데도 로또대박의 꿈을 움켜쥐고자 하는 부나비처럼 많은 사람이 이런 흐름에 그저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꼭 이렇게 밖에는 할 수 없는 걸까요?

물론 아이에게 성적 때문에 상처받게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게 되거나 또는 아이들이 스스로 학원에 등록해 공부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과연 그 길 밖에는 없는 건지요.

과외나 학원은 꿈도 못 꾸는 절대빈곤 하에 놓인 아이들은 물론이려니와 웬만큼의 투자로는 어림도 없을 일인데도 올인을 하다시피 하여 아이들의 미래를 꿈꾸는 서민들에게 교육을 통한 계급의 변화가 과연 용이한 일일까요.

차라리 그 꿈을 다른 각도로 가지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고 당장, 또는 내일의 행복을 담지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아이의 미래가 반드시 지금의 학업에만 달려있지 않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발상 같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믿음’을 갖고 도도히 흐르는 흐름에서 벗어나 잠깐 둑 위로 올라앉아 보다 넓은, 자유로운 길을 개척할 여지는 없을까요?

학창시절에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게 한다면 더욱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랄 터이고 그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을까요? 아 물론 학벌이 필요치 않은 분야에서이겠지만요.

학벌 없이도 사회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또 일정하게 나름의 영역에서 성취해 내는 사람이 늘어나야 학벌사회가 서서히 무너지고 결국 고질적인 입시문제도 서서히 해결되어 나가리라 생각됩니다.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부터 실천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