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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을 기억하라! (장경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6:11
조회
1958

“김선일을 살려내라!”는 그 무수한 외침이 있었던 때로부터 어느덧 1년, “김선일을 기억하라!”는 추모의 외침이 들려 온다. 고 김선일씨 1주기 추모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었다. 포스터에서 김선일씨의 아버님은 아들의 추모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계신다. 아버님의 감사의 말씀에도 이에 부응하는 추모의 열기는 왜소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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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김선일씨의 절규는 우리를 일깨웠다. 이른 아침 뉴스에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김선일씨의 절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국민의 여론도 무시한 채 국익론과 한미동맹의 현실론을 내세워 다국적군 중 세번째로 많은 3천여명의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추가 파병을 결정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 분명하였다. 거리에는 김선일씨를 살리기 위한 촛불이 켜졌다. 김선일씨가 이라크 저항세력의 참수 위협에 직면해 생명이 경각에 달린 바로 그 때 그들은 이라크 추가 파병 방침을 철회하여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대신에 추가 파병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혔다.


 김선일씨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촛불을 밝힌 수많은 국민들의 염원은 그렇게 짓밟혔다.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소중한 국익과 한미동맹을 위하여. 제2, 제3의 김선일씨와 같은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 죽음의 한미동맹과 노무현 정권을 규탄하는 분노의 함성이 타올랐다.

김선일씨가 이라크 저항세력에 의해 납치된 이후 알 자지라 방송에 의해 김선일씨가 절규하는 피랍 장면이 방영되기 전까지 미국과 한국 정부는 김선일씨의 납치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주장하였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한국 정부는 자국민이 납치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자이툰 부대의 추가 파병을 최종 결정 발표하였고 발표 며칠 뒤 알자지라 방송에 의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김선일씨가 근무한 회사의 사장은 알 자지라 방송 보도 이전에 이미 김선일씨의 피랍 사실을 확인하였고 개인적 차원에서 저항세력과 접촉하며 김선일씨 구명 노력을 하였다 주장하였다. 그는 당국에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조용히 민간에서 인질 석방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 저항세력을 자극하지 않고 인질의 안전한 석방을 위해 더 효과적이다라는 판단으로 미군 당국과 이라크 주재 한국 대사관에 김선일씨의 납치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한다. 그는 인질 구명 협상을 진행하는 기간 이라크 주재 한국 대사관을 수시로 드나들면서도 단순히 업무 협의만을 하였고, 미군을 상대로 한 군납업체의 하청일을 하는 업체의 사장으로서 미군을 상대로 군납 하청일을 하던 소속 근로자가 납치되었는데도 원청 업체, 미군 당국, 현지 경찰에 전혀 납치 사실을 알리지도, 신고하지도 않은 채 인질 석방 협상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였다고 한다.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알 자지라 방송 이후 언론과의 최초 접촉에서는 알 자지라 방송 보도 이전에 이미 미군과 김선일씨 피랍 사건을 협의하였다고 하였다가 이후 그러한 언론의 보도가 거짓이라고 하면서 완강하게 미군과 협의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하였다.

한편 AP통신은 알 자지라 방송 보도 이전에 이미 저항세력에 의해 제작되어 배달된 납치된 김선일씨의 인터뷰 화면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먼저 입수하였고 이 비디오 테이프에 의하면 김선일씨는 자신의 국적, 이름, 주소를 정확히 확인해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P통신은 김선일씨의 납치 사실을 즉시 세상에 '공개보도'하기는 커녕 미군 당국과 한국 정부에 피랍자의 신원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AP통신은 알 자지라 방송 보도 이후에야 뒤늦게 자신들도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한 바 있다고 하면서 김선일씨가 국적, 이름, 주소를 정확히 확인해 주는 장면은 삭제한 편집된 비디오 테이프를 세상에 공개하였다. 편집된 비디오 테이프 내용만으로는 마치 김선일씨의 국적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하지 못한 양 AP통신은 혹 한국인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서울지국을 통해 한국의 외교통상부에 한국인 납치자가 없는지 “문의”를 하도록 조치를 취하였으나 외교통상부 공무원들로부터 한국인 납치자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보도하였다. AP통신의 이러한 보도로 알 자지라 방송 보도 이전에 한국 정부의 김선일씨 납치 사전 인지 여부가 더욱 논란이 되었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김선일씨 피랍 사전 인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 핵심적 진상 규명 내용이라 할 국회의 국정조사기간 열린 청문회에서 AP통신이 입수한 편집되지 않은 원본 비디오 테이프가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 의해 공개되는 순간 그 화면에서 김선일씨는 자신의 국적, 이름, 주소를 정확히 말하고 있었다. 언론기관으로서 초보적 사명도 책임감도 저버린, '공개보도', '통보'가 아니라 '문의'에 그친 본말이 전도된 자신의 행태를 합리화하기 위해 비디오 테이프를 조작하면서까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AP통신의 작태를 여지 없이 드러내 보이는 순간이었다. AP통신이 김선일씨의 국적, 이름, 주소가 정확히 밝혀진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하고 서울 지국에 한국 정부측에 확인하도록 하고서도 같은 시기 이집트인과 터키인의 피랍 테이프를 즉시 공개한 반면 유독 김선일씨의 테이프를 방영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AP통신은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한 이후 이를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사령부 및 미군에 분명히 전달하였고 비디오 테이프 방영 여부에 대하여 협의를 진행한 결과 한국의 이라크 추가 파병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인의 피랍사실이 알려질 경우 예상되는 한국 내 여론 악화로 인한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이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한 미군 당국의 엠바고 요청을 받아 들여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하여 이제라도 공개적으로 성실하게 답변하여야 한다.

국회의 국정조사특위 활동에도 불구하고 김선일씨 피랍살해 사건의 의혹은 해소되기는 커녕 AP통신의 행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새로운 진상 규명의 과제들을 남겨 놓았을 뿐이다.  의혹을 해소하고 진실을 밝히는 노력은 과제만을 남긴 채 그것으로 종료되었다.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활동이 어떻게 종료되었는지 그 누구도 더 이상 추궁하지도 더 이상 답하지도 않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 김선일씨 사망 1주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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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나도 노무현 정권의 소신에 한 치의 변함이 없다. 통탄할 일이다. 지난 5월 30일 자이툰 부대 인근에 로켓포 4발이 떨어지는 등 이라크 저항세력의 위협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바야흐로 자이툰 부대가 철군하지 않는 이상 제2, 제3의 김선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터에, 아르빌에 위치한 유엔 ‘이라크원조기구’(UNAMI) 청사 경계임무까지 맡아 자이툰 부대의 역할을 확대하고 자이툰 부대의 추가 파병연장까지 추진할 모양이다.

노무현 정권의 넋두리도 여전하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힘을 앞세워 국제법을 무시하고 범죄행위를 감행하는 데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로 약육강식의 국제질서 속에서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강대국 미국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를 들고 있다. 파병을 통해 한미공조자세를 변함없이 보여준 후에라야 핵문제 해결에서 군사적 선택도 배제하지 않는 미국에 대하여도 할 말도 할 수 있고 평화적 해결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주도적으로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한미동맹의 강화를 핵심적 논리로 하는 파병의 국익 기여 주장이야말로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비견된다. 식민과 분단의 한세기 동안 한민족을 짓눌러 옥죄며 굴종을 강요한 넌덜머리가 나는 사대주의적 발상에 다름 아닌 지겨운 변명이요, 허튼 궤변이다.

비밀리에 극적으로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여 눈물을 흘리며 파병 장병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보임으로써 조중동의 찬사를 받았다고 하여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가담한 파병의 불법성이 치유될 수도, 국익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고 보는가. 김선일씨의 피랍 살해의 근본적인 원인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마당에 이제 만일 단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더 희생된다면 노무현 정권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기만적이고 허구적인 국익 논리에서 벗어나 자주적 외교의 기원을 열어가는 정책으로써 자이툰 부대의 파병연장을 거부하고 철수하는 결정을 통해 역사의 법정에서 거듭 태어나는 심정으로 속죄할 것인가, 아니면 블레어처럼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을 안고 제2의 김선일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불덩이를 머리 위에 인 채 정권의 위기를 자초할 것인가.

 

참수 직전까지 평화와 생명을 갈구한 김선일을 기억하라!
즉시 자이툰 부대를 철군하라! 죽음의 한미동맹을 파기하라!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