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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의 긍정적 기능 (도재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7:16
조회
523
요즈음 내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철이 든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데올로기를 숭배하기엔 너무 게으르고, 원칙을 고수하기엔 너무 약하다. 그렇지만 무엇이 온당한 것인지를 알 정도의 지능은 가지고 있다. 거칠게 얘기한다면, 내가 보기에 1987년 보다는 현재가 더 온당한 세상이다.

그러나 이따금씩 나는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우리 사회가 옛날의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하여 한 노력과 희생에 비하여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뒤처진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좀 더 민주적인 모습을 띠고 진실로 소수자와 시민을 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기도 한다. 그리고 누가 자신들을 선출했는지도 잊어버린 채 시민의 고통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현재의 집권층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한다. 때때로 현재의 집권세력과 그것을 다투는 야당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정부라면 야당이 다시 집권하더라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알고 있다.

요즈음 모 교수의 발언 때문에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내가 거실에 앉아 편하게 TV를 보는 동안에도, 여러 사람들이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이와 관련하여 논쟁을 하고 있었다. 정말 그 사람들은 고생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들이 안쓰러웠다.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내가 철이 든 이후 계속 들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매번 일정한 주기에 따라 되풀이되기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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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 사진출처: 연합뉴스




만약 공중파 방송사들이 토론자들을 조금이라도 동정하였다면, 바쁜 사람들을 그렇게 불러 모으지 말고 옛적의 녹화 테이프를 틀었어야 했다. 시간을 많이 소요할 필요도 없으니 줄여서 토론 요지만을 방송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과연 이 다툼이 무의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며 옛날의 경험이 되살아났었다. 마치 그것은 나에게 ‘네가 자꾸 그렇게 불평만 하는데,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자신이 있느냐?’라고 묻는 것 같았다. 아마도 지금의 이런 광경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좀 더 원칙적인 입장에 터 잡아 다음 선거에서 투표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선거구에서 개인적으로 훌륭한 인물이 야당의 후보로 나오더라도 그 사람에게 표를 줬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투표하였던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의 다툼을 보고선 나는 다시금 우리 사회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낮춰진 나의 의식 수준은 다른 시민이 불명예를 안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걸 모른 채 성장하는 세대가 다시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숨기는 것도 부족하여 그 시민들과 가족들에게 불명예를 안겨 주었던 세력들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민이 만든 법이 어떤 세력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이 한 가족의 평화와 인권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성장하였던 많은 시민들이 그런 두려움 속에서 이번 논쟁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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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고뉴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국가보안법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의 야당이나 일부 언론 역시 제한적이나마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야당이나 일부 언론을 비난할 필요도 없고, 설령 여야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의 개정을 서두를 것도 없다.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한 국가의 민주화는 천천히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부탁할 게 있다면, 이제 그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당신들이 더 이상 수고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다시 세력을 얻고 싶다면 새로운 방식을 생각해 냈으면 좋겠다. 당신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이 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