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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귀신이 되어버린 나의 조상 (위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7:05
조회
546
추석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추석이 되기 전 주말이면 수도권 인근의 국도는 성묘객이 몰고 나온 차로 북새통을 이루고, 라디오는 어느 길과 어느 길은 성묘 인파로 막히니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친절하게 안내하기 바쁘다. 그래도 그 막히는 길을 찾아간다. ‘왜 이렇게 길이 막히는지 모르겠다’라거나 ‘내년에는 사람 없을 때에 성묘 가자’ ‘시간을 당겨서 새벽에 가자’라고 말하면서도 고생길을 달려간다. 사람보다 느리니 달려간다고 할 수도 없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조상 모시기는 참으로 유별나다. 설, 한식, 추석이면 꼭 성묘를 다니고, 조상을 찾아뵙고, 제사 지내고, 차례 지내고,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모시는 시제 지내고……. 영문도 모르는 세살짜리 꼬마 녀석에게 절을 시키며 절하는 흉내라도 내면 좋아라 박수치며 잘했다고 칭찬하고 그 부모는 으쓱해 한다. 술 한 잔 따라 올린 남자들은 대단한 일 한 것처럼 가슴 뿌듯함을 느끼고, 힘들게 음식 장만한 아낙네들은 그런 남자들을 보며 올해도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사는 동네는 주말이 되면 확성기 소리와 북 소리로 시끄럽다. 토요일 밤이 되면, 그리고 일요일 아침이 되면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을 내보낸다. “일요일 아침 10시에 ○○성당 앞에서 반대집회가 있으니 주민여러분의 참여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성당에서 납골당을 만들기로 했단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그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혐오시설인 납골당 건립을 반대한다는 것이고, 납골당 허가를 해준 구청에 항의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플랜카드가 나붙었다. 아이들이 곡소리 때문에 학교 다니기 무서워한다거나, ○○성당의 신부들은 지옥 불에 떨어지라거나 학교 근처에 잡귀신이 나돌아 다녀서야 되겠냐는 등의 내용이다. 납골당이 생기면 교통 혼잡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내용도 보인다. 그런데 집값 떨어진다는 말은 보기 어렵다. 분명히 떨어질텐데…….

남한의 면적은 99,461㎢라고 한다. 1999년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남한 내 묘지 면적이 996㎢인데, 이는 전 국토 면적의 1%에 해당하는 정도이고, 주택면적 총 대지 2,177㎢의 절반에 가깝고, 서울 면적의 1.6배에 해당하고, 전국 공장부지 418㎢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다. 공설묘지든, 법인묘지든 묘지를 만들기에는 전국토가 이미 포화상태이다. 아울러 납골당 설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라는 것이 관심 있는 사람들의 일반화된 의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조는 “이 법은 매장·화장 및 개장에 관한 사항과 묘지·화장장·납골시설 및 장례식장의 설치·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방지하고, 국토의 효율적 이용 및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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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설묘지든, 법인묘지든 묘지를 만들기전에는 전국토가 이미 포화상태이다."


라고 규정한 뒤, 제4조에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묘지의 증가로 인한 국토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화장 및 납골의 확산을 위한 시책을 강구·시행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규정한 뒤에 구체적으로 자치단체장들에게 묘지 등의 수급계획을 세우도록 명하고 있다. 화장 및 납골의 확산은 결국 국토의 효율적 이용 및 공공복리의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책과 수급계획까지 세워야 할 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국토의 효율적 이용에 도움이 되고, 공공복리 증진에 도움이 되는 납골당 건립을 사람들이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뭔가.

아이들이 납골당을 지나면서 곡소리를 들으면 무서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맹모가 맹자를 데리고 3번 이사하면서 장의사 옆에 있던 집에서 이사를 했다는 고사를 생각하면 학교 옆에 납골당이 생기는 건 부적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교통 혼잡을 야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명절, 한식 때면 길이 막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묘를 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납골당이 생겼을 때 그곳으로 찾아올 수많은 성묘객은 충분히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작과 사실은 엄연히 다른 법. 과연 납골당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속내가 공공 이익을 위한 합리적 근거와 인정(人情)의 틀 안에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나의 귀에는 저들의 목소리가 속 좁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적 외침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작은 성당 안에 납골 봉안실이 과연 몇 개나 될 것이며, 그 봉안실을 찾을 유족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기에 곡소리가 무서워 아이들이 학교가기가 무섭다고 하는가. 그 곡소리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 아닐까. 죽음이 삶의 자연스런 연장이고, 죽음조차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삶의 무게를 느끼는 살아있는 체험장이 될 수도 있을 것 아닌가. 내 조상 아니니 안 된다는 것인가. 자신의 조상은 차례다, 제사다, 어떤 음식이 올해는 빠졌다, 음식 위치가 바뀌었다, 절은 몇 번 해라, 술잔은 어떻게 돌려라, 뭐다 뭐다 하며 챙기지만 정작 다른 이의 조상은 잡귀신에 불과한 게 우리의 정신세계인가.

차라리 솔직하게 반대하는 이유를 말하면 밉지나 않겠다. 무시무시하게 새빨간 글씨로 쓰여 진 플랜카드를 보는 것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속내는 솔직히 집값, 땅값 떨어진다는 이유로 납골당 건립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식하지 못한 정신적 괴리를 스스로 드러낸다. 실제 조상을 정말 잘 모실 생각이면 그 멀고도 막히는 길 허위허위 찾아가 일년에 한 두 차례 성묘를 하는 것보다 가까운 납골묘에 모셔두고 자주 찾아뵙는 것이 오늘날 변형된 효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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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공간에 자리잡은 LA 로즈힐의 장례식장.  이곳에선 결혼식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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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한복판에 위치한 호놀룰루의 한 공원묘지.
여유로운 도심 공원을 연상시킨다.



다른 나라에서는 죽은 자를 산자와 함께 삶의 한복판에 두고 있는데, 효를 지상 최고의 가치인양 여기는 우리는 왜 죽은 부모 형제를 삶의 현장에서 제거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체계를 배신하는 행위 아닌가. 서글펐다. 어쨌든 남에게 나의 조상은 잡귀신에 불과했으니까.

아무튼 이런 일을 전해들은 한 할머니께서 한 말씀 하셨단다. “지들은 안 죽나?”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