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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두가지 오해 (도재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6:05
조회
618
요즈음 다시 비정규직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관련 법안에 대하여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안이 통과될 경우 총파업을 하겠다고 발표하였지만, 정부의 입장은 쉽게 변하지 않을 듯 하다. 정부는 비정규직 고용 자체에 대한 통제가 시장질서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걱정 때문에 사유 제한 방식을 통하여 비정규직의 고용 자체를 통제하자는 노동계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해 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오해가 있다. 첫째는,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정규직의 고용 자체를 그 채용 사유에 따라 제한하면 노동시장의 왜곡이 올 수 있다는 우려이다. 순서대로 얘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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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리는 IMF 이전에는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정규직이었고, 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급격하게 비정규직이 늘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IMF 이전에도 우리나라의 전체 근로자 중 45% 내외가 비정규직이었다. IMF 이후에 7% 내지 9% 증가하였을 따름이다. 이는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가 시장경제질서를 택하는 한 비정규직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노동시장에서의 수요공급에 따라 생겼다고 소멸하고,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듣다보면 곧바로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요즘 들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분야에서 사용되는 비유를 들어 보겠다. 변호사들은 과로사가 일어나는 시점을 양동이에 물이 넘치는 상황과 비교하곤 한다. 어떤 근로자가 사망한 후 재판 과정에서 그것이 과로사인지 여부가 문제될 때 항상 제기되는 질문이 ‘왜 다른 근로자들은 그 정도의 업무량을 소화해 내는데, 그 근로자만 죽었느냐?’란 것이다. 이 때 변호사들은, 어떤 근로자가 자기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넘어선 일을 하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은 스스로 버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런 상황을 양동이에 물이 거의 찼지만 아직 넘치지는 않는 상태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특별한 계기로 비정상적인 과로 상태에 이르거나 충격을 받는 경우를 그 양동이에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으로 비유한다. 즉 특정 시점의 물 한 방울로 인하여 양동이의 물이 넘치듯 그 근로자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역시 같다. IMF 이전 우리 사회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정규직을 고용하기 어렵거나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을 때 비정규직을 채용하였다. 그 비율이 약 45% 내외였던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좋지 않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 정도는 우리 사회가 버틸 수 있었다. IMF 이후 우리 사회는 정규직 근로자의 삭감과 비정규직으로의 대체 고용을 구조조정의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 때도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제가 회복되면 다시 정규직 고용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IMF 사태가 극복이 된 이후에도 이러한 사정이 변화되지 않자,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는 늘어난 비정규직을 짊어지고서 일시적으로 버틸 수 있지만,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늘어난 비정규직이 양동이에 떨어지는 마지막 물 한 방울이 되어 우리 사회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인 모습으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지 여부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둘째, 비정규직 법안에 관한 정부, 경영계, 노동계의 다툼은 비정규직의 사용을 일정한 범위 내로 제한할 것인지 여부와 관련되어 있다. 정부와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채용. 사용 여부는 시장질서에 맡겨야 하고 법률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한다(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이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법률로서 제한하자고 주장한다.

비정규직의 고용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제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을 시장질서에 맡겨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장이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노동력의 매매에서 근로자와 자본가 즉, 사용자의 힘은 동등하지 않다. 취업을 할 때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자신의 연봉이나 근무조건에 관하여 회사와 협상하지 않는다. 근로자들이 게을러서일까? 아니다. 협상 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용을 협상하는 근로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가 원하는 조건을 관철시키기는커녕, 그 채용이 거부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근로자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는 일을 하여 돈을 벌지 않으면 굶어죽게 된다.

비정규직 법안의 첫번째 목표는 IMF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 비율을 IMF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노동계도 비정규직의 사용 자체를 금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구호로서의 ‘비정규직 철폐’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때, 혹은 그 사용이 합리적일 때 회사는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막자고 하는 것은 시장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다. 현재 문제되는 것은 사용자측이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법률은 시장질서를 왜곡하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법률이더라도 시장질서를 왜곡시키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훼손한다면, 그것은 경영자뿐만 아니라 근로자에게도 비극적인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시장질서가 불공정하게 형성되어 있을 때, 법률은 그 한계적인 상황하에서 개입할 수 있다. 법률은 시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법률은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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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노동계의 주장에 대하여, 정부는 이것이 시장질서를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노동계가 얘기하는 바대로 비정규직 법안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노동시장에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는 범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사는 합리적인 필요에 기하여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다. 즉 법률이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더라도,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고, 비합리적인 이유에 기하여 비정규직 근로자를 사용하고 있는 일부 사업장에서만 유효할 따름이다. 즉 사유 제한 방식을 택한다는 것은 왜곡된 시장질서에 대하여 경고를 보내는 정도의 역할만 할 따름이다. 이런 결과가 온다고 하여 시장질서가 왜곡된다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의롭지 않던 것이 정의롭게 되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 혹은 비합리적인 상황이 합리적인 상황으로 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누군가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시장이다’라는 얘기를 하였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노동계 역시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 법률 역시 마찬가지이다. 시장을 무시한 법률은 효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시장질서가 불공정하거나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다른 시민의 생활을 위협할 때, 법률은 적용될 수 있다.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된 노동계의 주장은 한계적인 상황 또는 협소한 범위에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것을 마치 시장질서 전체를 무시하는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유치한 행동이다. 정부가 시장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비정규직 법안을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를 기원한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