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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 해프닝 - 출연자 방송 노출사고, 비주류 문화에 대한 ‘마녀사냥’ 우려 (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6:40
조회
690
며칠 전 한 인디 밴드가 공중파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해 성기를 노출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해당 프로그램은 당분간 방송중단 되었고 제작진들이 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 뿐 아니라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인디 밴드들에까지 불똥이 튀어 ‘퇴폐적인 공연을 하는 밴드를 단속하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는 서울 시장의 지시까지 내려졌다고 한다. 공중파의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성기를 노출한 행동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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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번 사건의 주인공들은 그 행위 속에 별다른 명분이나 특별한 주장을 담을 생각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방송인 줄 몰랐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은 것을 보면 그 ‘생각 없음’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는 한 인디 밴드가 철없이 벌인 멍청한 해프닝’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그 바보스러운 행동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만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철없는 젊은이들이 벌인 해프닝에 대해 이 사회가 보여주는 반응은 가히 마녀사냥을 방불케 한다. 블랙리스트라니, 한동안 듣지 못했던 그 단어가 이런 맥락에서 튀어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금 우리가 도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아연해 지는 순간이다. 극단의 정치적 보수주의가 근엄한 문화적 도덕주의와 그리 멀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문제가 된 MBC TV의 ‘음악캠프’는 오랜 역사를 가진 대중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포함해 다른 방송사들도 방송하고 있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대중가요 시장을 신세대 취향의 주류 대중가요 중심으로 왜곡시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MBC의 ‘음악캠프’는 그런 비판을 나름대로 수용해 공중파를 통해 접하기 어려운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음악평론가들이 번갈아 가며 한 팀씩 추천해 출연시키는 이 코너를 통해 그동안 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이앤트메리, 허클베리핀, 싸지타 등의 인디 밴드, 천지인 같은 민중음악 그룹, 그리고 이승렬, 변재원 같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공중파를 통해 시청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코너 하나로 금방 대중음악 문화의 다양성이 회복되고 인디 음악의 성장이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동안 비주류 문화에 인색했던 공중파 방송이 이런 코너를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의의를 인정받을 수 있을 터이다.

요컨대 한 인디 밴드가 벌인 어처구니없는 해프닝 때문에 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갖지 못한 도덕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비주류 문화 전반이 퇴폐의 온상쯤으로 매도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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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블랙리스트니 방송에 대한 규제 강화니 인디 밴드 공연에 대한 단속이니 하는 것은 이 사건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또 다른 반문화적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인디 음악을 포함한 비주류 문화는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대중문화 풍토에서 그나마 문화적 창의성과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거점이자 보루이다. 도덕주의로 포장된 마녀사냥으로 비주류 문화를 매도하는 행태는 그들이 주장하는 ‘건전한 문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다시 한번 예술적 창의성을 옥죄면서 대중문화의 불모성만을 조장할 뿐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