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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더리탕이 준 삶의 작은 반성 (이창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0:47
조회
450
어제 교회구역모임에서 술을 좀 마셨다고, 일요일 아침에 아내가 서더리탕을 끓였습니다. 체중을 줄이고 싶어서 아침밥은 반 그릇만 먹으려고 했는데, 얼큰한 국물 맛이 혀에 착 감겨듭니다. 기름이 우러난 생선 국물을 연거푸 떠먹으면서, 남겨 두었던 밥 반 그릇을 마저 먹기로 합니다. 오늘은 예배 후 점심밥을 먹지 말아야겠다고, 아내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서 서더리탕 국물을 연신 입으로 퍼 나릅니다.

* 서더리탕
      - 원래 말은 "서덜", 서덜은 생선의 살을 발라낸 나머지(알, 뼈 등)를 말한다.
        서더리탕은 살을 발라내고 알, 뼈, 내장, 아가미 등으로 끊인 탕을 일컫는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을 떠올립니다. 회를 먹고 남아서 싸가지고 온 서더리탕이랑 밥 한 그릇이 이렇게 근사한 한 끼 식사가 되는구나!

이틀 전 부모님께 식사대접을 하려고 찾은 회집에서는 참 많은 요리가 차려져 나왔습니다. 소위 ‘스끼다시’라는 요리들이. 음식 가짓수가 많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닌데, 그 식당 음식은 입에도 잘 맞았습니다. 덕분에 부모님과 아이들을 즐겁게 해 드릴 수 있었지요. 다들 식사를 잘 하셔서, 맨 나중에 나오는 서더리탕은 재료를 포장해 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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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서울신문
 


 “사실, 여름엔 오이 하나로도 된장 찍어서 밥 먹을 수 있어야 돼.” 이렇게 말하는 예쁜 아내의 말에 나도 찬성합니다. 우리는 될수록 단순하고 좀 느린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관습에 길들여진 부분도 많아서, 손님을 접대하는 음식은 제법 그럴싸하기를 기대하지요. 우리가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드셔야 하는 음식이니까요. 그래서 요리가 잘 나오는 그 회집을 찾아가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서더리탕 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니, 그날 식사가 좀 과했던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저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제법 그럴듯하게 차려낸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생활을 ‘문명’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소위 문명화된 세계는 도시화로 표현되는 세련미가 우선 눈에 띕니다. 먹을거리나 주거 형태가 보다 편리하고, 아름다워 보이지요. 외국은 고사하고, 어쩌다 노원구 롯데백화점이나 강남역의 어느 거리를 걸어보아도, 내가 사는 동네와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 여러 가지 상품들과 또 그런 상황에 어울리게 꾸미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들....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인간의 활동에 의해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가 살아난다고 들 말하지만, 보다 맛있게 먹고 보다 세련되게 살아가려는 가운데 우리는 어떤 만족감에 도달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우리는 욕구를 내세우느라 관계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단순하고 정직한 국물 맛의 만족감 때문에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는 화려한 요리는 어떤 ‘문명’일까요? 내가 찾고 있는 하느님은 이런 문명 속에서 더 복잡해지고 더 아름다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을 맛으로 비유한다면 깨끗한 물 맛 이나 바람의 맛일 것 같습니다.

반찬 한 가지로 손님을 대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찌개 하나로 초대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익숙해져 있는 관습을 쉽게 덜어내지 못할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한 걸음씩 천천히 가야겠지요.


이창엽 위원은 현재 치과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