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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저 관용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지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0:44
조회
380
나는 새벽의 상상력이 좋다.

하루의 일과를 곱씹어보거나 그리운 이름을 떠올려 보거나 혹은 책을 읽거나 잡문을 끄적거릴때 새벽의 고요가 가져다주는 마음속의 풍경은 마치 도화지 같아서 나는 늘 새벽의 풍요위에 상상의 그림을 그리곤 했다.
간혹 여명(黎明)을 창으로 불러 함께 아침을 맞이하기도 하는데 그때는 농익은 살구, 새벽비에 떨어지듯 현관을 “툭” 치고 바삐 돌아서는 신문 배달부의 부지런한 생산력에 감사하거나 우는듯 혹은 웃는듯 새벽 골목을 헤매이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리어카 소리를 리듬처럼 듣고 난 후이다.
또한 지금까지 나의 부족한 창작물의 대부분은 새벽의 고요가 부화시킨 어린 생명과 같은 것이므로 새벽은 나에겐 중요한 생산 수단이기도 한 셈이다.

지금 나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독일 월드컵 16강 경기를 틈틈이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현재 스코어 1:1 ... 대단하다.
토레스와 비아, 라울의 스페인 공격진은 정교한 패스워크와 공 보다 빠를 것 같은 스피드로 프랑스를 압박하고 노쇠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프랑스의 아트사커는 비에이라의 발끝에서 이어진 리베리의 결정력으로 섬세하게 살아난다.
이 정도의 경기라면 나의 중요한 생산수단인 새벽을 통째로 반납해도 괜찮을 만큼 축구의 묘미는 충분하다.
돌이켜 보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축구가 재미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3백과 4백이 혼재된 수비라인은 간간이 상대방 포스트 플레이어에게 결정적 기회를 허용했고 조재진의 머리에만 의존하는 듯한 원톱 시스템의 공격진은 때론 단조롭거나 무료하기도 했다. 토고전과 프랑스전에서 얻었던 이천수. 안정환. 박지성의 골에는 잠자는 딸 아이가 울며 나올만큼 환호했고 스위스전 심판의 어설픈 판정(내가 보기에 오심은 아님)에는 육두문자가 절로 나오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 새벽에 전국 150만 씩이나 되는 국민들이 잠시 붉은악마가 되어 거리응원을 펼치거나 2006년 한해를 모두 월드컵에 바친 방송 3사의 충성어린 경쟁과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060628web01.jpg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기뻐하는 프랑스 선수들
사진출처 - 네이버



예선전을 포함한 월드컵 기간동안 한국은 세 명의 감독을 맞았었다.
그중 코엘류 감독은 월드컵 예선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그것이 여론이 되어 사임했으며 이어 감독으로 선임된 본프레레도 코엘류와 같은 동병상련을 맛보아야 했다.
코엘류 감독은 떠나면서 국가대표 팀의 총 연습시간이 약 72시간정도라며 투덜거렸고 본 프레레는 자국에서도 한국에 대한 독설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 약 9개월을 남겨두고 부임한 아드보카드 감독에 대한 언론의 애정은 이전의 감독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국가대표팀의 전 경기를 봐 왔던 나는 그가 다른 감독에 비해 월등히 나은 면을 발견하기 어려웠지만 언론은 내가 찾지 못하는 그의 장점들만 일일이 나열해 갔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 대한 방송사들의 상업적 경쟁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것이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화면에 오직 캐스터나 해설자의 상품성에 의존하여 채널을 선택해야 하는 답답함과 월드컵 특집 뉴스나, 그것도 모자라 거의 24시간 월드컵 관련 편성 까지 했던 방송사의 과도한 광고경쟁은 붉은악마의 자랑스런 “대~한민국” 구호와 맞물려 월드컵을 정작 축구는 사라지고 돈벌이와 묘한 애국주의만 남는 공허한 제전으로 만들었다.
명절 대목을 준비하는 재래시장 상인처럼 아마도 방송 언론사들은 아드보카트의 장점만을 부각시켜 여론을 축구에 대한 환각으로 몰아넣고 월드컵한탕 대목을 위한 담합과 경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국은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나 방송 3사가 들인 돈이 500억이 조금 넘고 수익도 그 정도라니 그만하면 된 듯 싶다. 한국팀이 16강 8강의 무대에서 2002년 4강팀의 면모를 보여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최대 800억 이상의 수익을 예상했다던 방송사의 기고만장한 상업주의적 행태를 보지 않아서 다행이고 축구의 재미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붉은 티를 입은 어린 꼬맹이의 “대~한민국”을 더 듣지 않아서 다행이다.

90년대를 관통하면서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극심한 내부적 갈등에 놓여 있다.
사회적 사안 하나하나마다 첨예하게 갈리는 의견의 대립은 지난해 유행했다던 상화하택(上火下澤)의 형국을 극복하지 못한 채 올 하반기를 맞이해야 한다.
단 한 치의 관용조차 용인되지 못하는 현재임에도 전 대회 4강팀의 16강 탈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이 하나도 없다. 선수들의 투혼에 불타는 헌신과는 별개로 애초에 16강에 못들 전력이었다면 지금처럼 호들갑 떨지 말았어야 했고 16강 전력인데도 탈락했다면 한번쯤 의문을 던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060628web02.jpg24일 새벽(한국시간) 하노버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스위스에 0-2로 패한 태극전사들이 경기가 끝난 후 허탈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아쉽지만 잘 싸웠다”는 의견이 전부인걸 보면 그동안 없었던 관용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역시 지단이다 3:1 프랑스 승
달빛에 기대어 서로의 칼날을 맞세우다가 상대방 호흡의 빈틈을 여지없이 파고들어 승부를 가르는 무인의 단 일초식 처럼 축구는 저렇게 하는 것이다.
저 조각같이 빚어내는 숨막히는 승부의 경연을 보기위해 나는 이 새벽의 생산을 중단할 것이고 여전히 지단을 가진 프랑스는 위대하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