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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가족 (김창남)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7 17:53
조회
501
안식년을 구실로 한국 사회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핑계 삼아 한가한 소리 좀 해볼까 한다. 영국에 살면서 내가 요즘 가장 몰두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만화영화 ‘The Simpsons 심슨가족’을 보는 일이다. 한국의 TV에서도 가끔 방송하던 이 만화영화는 의외로 한국에선 그리 큰 반향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적지 않은 마니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그 인기가 폭발적이었다거나 대중적이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마 만화영화는 아이들이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 보편화되어 있는 까닭에 ‘심슨가족’의 재미를 이해할만한 연령층은 이 작품을 그리 즐겨 보지 않았던 것 같고, 디즈니식의 깔끔하게 다듬어진 만화영화나 일본의 자극적인 만화영화에 길들여진 어린이들에게 심슨가족의 투박한 선과 울퉁불퉁한 캐릭터, 그리고 짙은 블랙유머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였을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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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위성 채널에서는 ‘심슨가족’을 매일 적어도 세편 이상 볼 수 있다. 나로서는 단조로운 외국의 일상에서 뜻밖의 즐거움을 만난 셈이다. 나는 이 만화영화를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꼭 함께 본다. 아들의 영어 듣기 능력이 나보다 훨씬 나은 까닭에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대단히 큰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양식있는 세계인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클린턴과 대결했던 선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심슨 가족이 아니라 월튼네 가족이 필요합니다.” 월튼네 가족. 아마 중년 이상의 세대라면 어린 시절 흑백 화면을 통해 보았던 월튼 가족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인자한 부모와 착한 자식들, 훈훈한 이웃들이 등장하는 도덕교과서 같은 드라마 The Waltons의 마지막 장면은 늘 똑 같았다. 창문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면서 가족들이 서로 ‘굿나잇’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늘 포근하고 애틋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아마도 조지 부시는 월튼가족이 보여주는 가족상이 미국 공화당과 보수 세력이 내세우는 보수적인 가족주의와 부합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월튼네 사람들’의 마지막 장면이 항상 똑같았던 것과 달리 ‘심슨가족’의 경우에는 시작을 알리는 타이틀 장면이 매일 조금씩 바뀐다. 직장과 학교에서 서둘러 돌아온 심슨 가족 다섯명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장면이 이 타이틀백의 마지막 장면인데 이 마지막 컷에 늘 기상천외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소파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구멍이 뚫리면서 밑으로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목이 뭉텅 잘리면서 가족들의 얼굴과 몸이 바뀌는 엽기적(?)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월튼 가족의 교과서적인 가족상을 좋아하는 조지 부시 같은 사람이라면 아마 그 타이틀 장면만 보고도 기절초풍을 하고 채널을 돌려버렸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는 심슨가족을 제대로 본 적이 없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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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가족’은 여러모로 TV만화영화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벗어나 있다. 그것은 우선 등장인물들의 생김새, 즉 아이콘에서부터 드러난다. 주인공 심슨 가족을 비롯해 이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도무지 예쁘다거나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왕방울같은 눈과 뾰족한 머리모양, 툭 튀어나온 입 등을 보면 ‘어떻게 사람을 저렇게 표현할 생각을 했을까’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예쁜 공주와 잘생긴 왕자의 유형을 벗어나지 않는 일본의 만화영화나 귀엽고 앙증맞은 디즈니식 만화영화에 익숙한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심슨가족의 아이콘은 차라리 위악적이다.

이는 이들의 성격에서도 나타난다. 심슨가족은 흔히 보는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무작정 선하거나 무작정 악하지 않다. 이들은 때로 매우 이기적인 심성을 드러내기도 하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 가족 자신은 물론이고 이들이 사는 스프링필드에는 늘 크고 작은 말썽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건과 말썽에는 오늘날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반영되어 있다. 그런 문제들이 만화라는 포장 속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코믹함으로 버무려져 있음은 물론이다. 이 만화 속에도 돈 많고 사악한 사장이 등장하고 어리석은 권력자가 등장하지만 이들도 인간적 약점을 드러내고 연민을 자아내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무엇보다도 심슨가족은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에 관해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보여준다. 예컨대 심슨가족은 동성애자들의 인권 보호에 절대적인 찬성 입장을 보여주고 환경 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이다. 최근에 본 한 에피소드에는 이 만화영화의 정치적 입장을 은근히 드러내는 대목도 등장한다. 심슨가족이 처음 유럽 여행을 떠나는데 심슨의 딸 리사가 자기 짐 가방에 캐나다 국기 표시를 붙인다. 바트가 왜 캐나다 국기를 붙이냐고 묻자 리사는, ‘최근 미국인들이 잘못된 선택을 많이 한 탓에 유럽인들이 미국 사람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심슨가족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도 저런 만화영화 하나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만화영화를 만든다면 우선 소재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심슨가족 식의 위악적인 블랙 유머의 소재가 될 만한 일들이 거의 하루도 안 빼놓고 일어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화가라면 당장 한편의 기막힌 블랙코미디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소재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재벌 회장이 정치인에게 뇌물을 건네고 그 장면은 공안 기관에 의해 도청 테이프에 담긴다. 다시 그 테이프는 정리 해고된 기관원에 의해 거래 대상이 되다가 세상에 폭로된다. 정부와 언론, 기업들까지 나서서 영웅으로 떠받들던 과학자가 하루 아침에 논문을 조작한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그래도 그 과학자를 구국의 영웅으로 믿는 사람들은 시위를 벌이고 강연을 방해하고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다. 별 새로운 내용도 없는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단지 자기들이 믿는 신에 대해 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교회들이 들고 일어나 영화상영 반대운동을 펼치고 그 덕분에 톡톡히 홍보 효과를 본 영화관 앞은 장사진을 이룬다. 그것  뿐일까. 굳이 만화가들의 풍자적 상상력이 아니더라도 사건 자체가 코미디인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게 한국 사회 아닌가 말이다. 하긴 그렇게 현실이 더 코미디이니까 그런 만화영화가 나오기 힘든 건지도 모르겠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