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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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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바라보며 인권운동 생각하기 (김 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7 17:46
조회
449
시인들은 타고난 감수성과 직관으로 세상 만물의 이치를 느끼고 꿰뚫으며 그들이 발견한 것을 우리에게 가슴에 와 닿는 언어로 전해주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담론이나 복잡한 방정식을 빨리 풀어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혹은 세상사 어느 하나도 쉽지 않고 더욱이 사람들이 모여 하는 일이면 그 취지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꼭 어려움이 동반된다며 푸념하거나 체념하는 우리들에게 시인들은 매우 단순한 것 안에 담겨 있는 자연의 이치를 눈 여겨 보라고 한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에서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권리를 찾자며 배부한 유인물에서 나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그 시 안에서 나는 인권운동에 대한 생각, 특히 실천과 연대에 대한 하나의 답을 발견한다. 시의 단락을 편의상 둘로 나누는 우를 범하면서 인용해본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우선, 인권운동은 ‘벽’을 넘는 투쟁이며, 연대를 통한 것이다. 한국에는 꽤 많은 인권단체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를 들면, 종합적인 인권단체(인권실천시민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다산인권센터, 평화인권연대, 새사회연대 등), 종교권 인권단체(천주교인권위원회, KNCC 인권위(한국교회인권센터), 불교인권위원회, 원불교인권위원회 등), 전문가 인권단체(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 피해자 인권단체(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등), 장애인 인권단체(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이동권연대 등), 성소수자 인권단체(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등), 과거청산 관련 인권단체(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등),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이주노동자인권연대 등), 지역 인권단체(수원 다산인권센터, 안산노동인권센터, 광주인권운동센터, 부산인권센터, 울산인권운동연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등), 사회권 중심 단체(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 정보인권 중심 단체(진보네트워크센터, 지문날인반대연대 등), 기타(국제민주연대, 사회진보연대 등)가 있다.

이 단체명만 보더라도 한국 사회의 인권운동이 넘어야 할 벽들이 첩첩으로 싸여있음을 금방 알게 된다. 각 인권들이 서로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리이듯이, 이러한 운동들도 상호의존적이고 불가분리하다. 이 모든 인권들이 총체적으로 동시에 실현되어야 하듯이, 인권운동단체들의 연대는 전략이자 행동원리이며 존립의 기반이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인권운동은 결국 절망의 벽을 넘는다. 인권운동진영은 그동안 사회보호법 폐지, 준법서약서제도 폐지, 호주제 폐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입법화 등을 성취했다. 아울러, 지속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사회복지시설 생활인의 인권 확보 운동, 사법개혁 운동, 장애인 교육권 및 차별금지와 권리구제 운동,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실현 운동, 비정규권리입법 쟁취 투쟁, 이주노동자 인권운동, 다양한 과거청산운동,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정보인권운동, 국가인권위원회 감시운동 등과 국제연대운동, 인권교육운동 등을 하고 있다. 이 나라가 인권의 푸른 잎으로 덮일 때까지 인권운동은 결코 고개를 떨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결국은 그 벽을 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인권운동은 어떤 성찰이 필요할까. 인권운동은 큰 목소리로 벌여야하지만 그 운동의 뒷심은 말없이 꾸준히 행하는 실천에서 온다는 점, 담쟁이가 벽을 파랗게 덮을 때까지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점, 인권단체들끼리 꼭 여럿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점, 인권단체 안에서 작은 담쟁이 떡잎들을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는 점, 그리고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된다는 점 등 아닐까.

아울러, 우리는 담쟁이 잎들이 넝쿨을 이루면서도 잎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도 탄탄한 잎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각 인권단체의 전문성을 토대로 하여 연대를 맺는 조직적 대응을 좀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분산적인 대응만으로는 총체적으로 요구되는 인권적 과제들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조직적 대응이 필요하며, 동시에 각 단체들은 저마다의 분명한 전문 영역을 확보하고 의제별로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인권단체들과 시민들과의 연대가 활성화 되어야하고, 시민사회 안에서도 인권의 꿈과 의지를 가진 작은 담쟁이 떡잎들이 계속 자라나야 할 것이다. 사람 다니지 않는 산이라도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면 오솔길이 생기듯, 희망을 계속 지니게 되면 언젠가는 현실이 되며,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믿고 인권의식과 감수성을 터득해가는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그리고 그들이 인권단체들을 찾고 동참하며 그들의 뒷심이 되어줄 때, 마치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는 말처럼 인권단체 잎 하나하나는 각기 수천 개의 담쟁이 잎들을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꿈꿀 권리』라는 책 이름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인권현실 앞에서는 꿈을 꾸는 것이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 담 벽 너머의 세상을 꿈꿀 ‘권리’와 함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담 벽을 넘어야 한다는, 기어이 넘고 말아야 한다는 ‘의무’ 아닐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