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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통하여 해결할 수 없는 것들 (도재형)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1 12:01
조회
446
5월 말로 예정된 지방선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은 나름대로의 색깔을 드러내고, 시민들은 또다시 지역사회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꾼다. 선거는 아름다운 제도이다. 정치인들은 구체적인 권리 주체로서의 시민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자신만의 청사(廳舍) 안에서 안주하던 정치인들은 선거가 가까워지면, 누가 자기에게 그 권한을 주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때만큼은 정치인들도, 재산의 과소나 나이나 남녀 여부와는 무관하게, 1명의 시민에게 1명분의 선거권이 있다는 점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시민들 역시 과연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가 이번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지 여부를 고민하고, 친지들에게 그 후보자의 장점을 자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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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경기도 수원 도(道)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 선관위 직원들이 5.31 지방선거 포스터를 점검하고 있다.  /신영근(수원=연합뉴스)



사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는 극심한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ILO 구제금융이 경제적 분열(양극화)을 가져왔다면, 참여정부의 집권은 일종의 이념적 분열을 초래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집권세력이 야당 세력과 별 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제1야당이나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 스스로는 참여정부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다음 번 대통령선거는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다투어질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참여정부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현 집권세력이 정부를 구성할 권한을 가지고 그들이 자신을 통치한다는 점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지난 번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절치부심하며 미래의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임기 중 탄핵과 같은 합법적인 절차 없이는 현재의 대통령을 부정하거나 현재의 정부가 아닌 다른 정부로부터 통치를 받겠다는 주장을 하지는 못한다. 최소한 절반 이상의 시민들이 현 집권세력에 비우호적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로지 다음 대통령 선거만을 기다리면서 술집에서 누군가를 욕하는 정도의 행동만을 하고 있다. 내가 흥미로워 하는 점을 간단하게 얘기하면, 정부의 선택과 관련하여 어느 누구도 이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를 상상해 보자. 이 사회에는 여러 개의 정부가 있다. 삼성 그룹이나 현대 그룹과 같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정부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고, 혹은 몇몇의 시민들이 조합을 구성하고 정부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한다. 시민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부를 택하여 그 세무서에 세금을 납부한다. 정부들은 좀 더 많은 시민을 확보하기 위하여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세금을 할인하고, 다른 정부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시민들은 자신이 속한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른 정부로 옮길 따름이지 선거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지는 않는다. 이 사회에서 시민들은 가장 저렴한 세금을 내며 가장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이성적이고 단순한 이미지에 의하여 그 결과가 좌우되는 선거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경제적인 판단에 따라 자신의 정부를 선택한다. 따라서 정부 선택의 문제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도 없다. 생각이 다른 사람은 그저 다른 정부를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러한 정부 시스템은 시민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하도록 하는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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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국민일보



그런데도 우리는 이와 같은 합리적인 정부 모델을 운용하지는 않는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치광이로 취급될 것이다. 그 이유는 한 나라의 통치 시스템을 시장에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가 정부 선택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제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가장 민주적인 제도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기 때문이다. 즉 정부의 정당성은 민주적 선거제도를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 이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 주위에는 시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스크린 쿼터도 그 중 하나이다. 우리는 문화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나 용역과 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말이나 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한국에서의 공용어가 한글이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한국의 언어를 시장에 맡겨 결정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문화와 언어가 시장에 의하여 좌우될 수 없다면, 사람에 관한 문제는 어떨까? 사람의 삶과 존엄성을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람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요즈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여러 해법이 나오고, 그와 관련하여 여러 입장이 전해지고 있다. 부족한 지식과 식견 탓에 나로서는 어떤 것이 좋은 해법인지를 판단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 해법들을 살펴볼 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그 사람들을 시장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점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선거를 통하여 정부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이것 역시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도재형 위원은 현재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