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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단상 (위대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1 11:35
조회
461
바야흐로 축구의 황금시절이 다가오고 있다. 2002년 광화문 사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티셔츠 물결이 2006년 여름 다시 돌아올지 모르겠다. 포백이 어떻고, 스리백이 어떻다는 것 정도는 이제 상식적인 얘기가 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참으로 머리가 좋다. 현재도 진행 중인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이 시작될 무렵 이미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 생명공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처럼 한국 사람들은 이제 현대 축구 전략과 전술을 훤히 꿰뚫고 스스로 감독이 되어 자신만의 대표팀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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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의 음식점, 술집 등에서 경기를 TV중계 한다고 광고문구를 써 붙이는 것은 이미 예삿일이다. 축구가 끝난 다음이면 신문과 방송은 일제히 경기결과를 알리고, 그 분석 기사를 내놓는다. 한국이 이기는 경우에는 희망이 보인다거나, 지칠 줄 모르는 압박이 승리를 견인했다고 하거나, 지는 경우에는 골 결정력이 약하다거나 수비 뒷공간이 자주 열렸다거나 하는 식이다.

한국이 이긴 경우는 다른 어떤 사건보다 축구경기에 대한 보도가 앞선다. 사람들도 경기 결과와 그 분석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건에 언론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언론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문은 판매부수에 신경을 써야 하고 방송은 시청률에 신경을 써야 한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나무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사람들은 좋아한다.

그런데, 축구에 대한 기사가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다른 뉴스들을 사장시켜 버릴 만큼 그렇게 삶에 소중하고, 긴요한 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좋아하지만, 축구를 통한 국민 통합, 국위 선양 어쩌구 하는 얘기는 믿고 싶지 않다.
2002년 6월의 한 신문의 기사를 보면,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많은 일들은 그저 외면당하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제대로 인식되지도 못한 채 지나가 버렸다. 대우자동차 판매노조의 임금체계 개악반대 시위,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단식농성, 병원파업 노조간부의 기습연행, 미군부대 고압선에 감전된 전동록씨의 사망,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고, 지문날인 거부자들에 대한 대체신분증 발급 거부로 인한 참정권의 사실상 박탈, 병원에서의 슈퍼박테리아 감염 뒤 해당 병원으로부터 퇴원 압력을 받은 환자들 문제, 노바티스에 대한 백혈병 항생제 글리벡 가격인하 요구,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의 위헌적인 등급분류 보류제도 적용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서해안에서 북한과의 교전이 있었고, 국제형사재판소의 근거규정인 로마규정이 발효됐으며, 지방선거도 있었다. 무엇하나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사안들이었다. 이 모든 일들이 “대~한민국” 한방에 덮였다.

월드컵을 통해 확인되었다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동성은 어찌 보면 과장된 것일 수 있다. 순간의 기쁨과 환희를 같은 장소에서 발산하고 싶은 젊은 세대의 열병일 수 있다.

1965년 4월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시위대는 그 규모가 40만명에 이르렀고, 그해 11월 워싱턴에서는 10만명의 반전시위대가 운집했다. 2004년 3월 20일 미국의 이라크 전쟁 1주년이 되는 날 이탈리아에서는 100만명, 런던에서는 20만명, 뉴욕에서는 10만명이 참여한 반전집회가 열렸다. 이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만 따진다면 2002년 월드컵 때의 붉은 악마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다. 이들의 역동성이란, 그 참여의지란 정말 굉장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동성, 역량을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 이후의 각종 촛불집회, 탄핵집회 등을 통해 보여준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량은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그러나 양보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너무나도 차분한 것이 사실이다. 아니 무관심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무관심은 조장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관한 문제, 외국인노동자에 관한 문제, 사학법에 관한 문제,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문제, 쌀 개방에 관한 문제, 국가보안법에 관한 문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이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표류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2006년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 또 다시 한달, 그리고 그 여파가 미칠 여러 달 동안 많은 문제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될 수 있다. 또 다시 무관심이 조장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참으로 머리가 좋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문제의 본질까지 꿰뚫어 본다. 그 해결책도 생각해 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문의 끄트머리에 놓일지 모르는 일들을 눈앞에 붙잡아 둘 각오를 다져야 한다. 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치는 순간 상황은 악화되고 해결의 실마리도 놓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고 하여 국가위상이 드높아 지는 것은 아니다.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다고 하여 국민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형식적인 수치로 발견되는 국가위상보다 내실 있고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국가위상은, 방치되고 악화되어 곪아터진 제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는데서 발견되고, 고양되어야 한다. 고통받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어깨를 함께 하고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을 때 비로소 국민통합은 그 기초가 마련된다. 대본 없는 연극의 짜릿한 감동, 기쁨, 환희, 그것은 순간의 고통을 잊게 하는 몰핀에 불과하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