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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과 우리 경험을 나누자 (김대원)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1 11:26
조회
377
며칠 전 나눔의집에서 빈민과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시는 한 신부님이 외국인 가족 중 두 사람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며 자랑하셨습니다. 신부님이 이태원의 모스크 지도자들의 협조로 외국인 이주노동자 상담사업을 진행하여 오던 중에 만나게 된 미얀마 사람들인데, 2년간 애태운 끝에 얻은 쾌거였습니다.

그 두 사람은 미얀마의 로힝야(Rohingya) 부족입니다. 로힝야 부족은 1962년 미얀마의 군사 쿠데타 이후 단지 무슬림이란 이유로 온갖 박해와 차별을 당해 왔습니다. 사유제산을 몰수당하고 거주제한과 강제노동에 시달렸으며 심지어는 무슬림인 그들에게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1970년 이후로는 시민권조차 얻지 못하여 현재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무국적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결국은 그 박해를 피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는데, 특히 방글라데시 국경 지역에만 25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모여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방글라데시에서마저 본국으로 송환될 처지에 놓이자 그 위기를 피해 지난 2003년 11월 한국으로 왔습니다. 난민신청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다가 다행히 지난 해 12월과 올 1월 6일 법무부로부터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되어 추방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기뻐할 일이었지요.

그러나 아직도 수백 명이 난민인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회에 우리나라의 난민정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1992년 국제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그 뒤로도 난민을 인정하지 않아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8년만인 2000년 1월에 처음으로 한 명을 난민으로 인정하였고, 2003년에 12명, 2004년 12월에 17명을 인정하는 등 현재까지 40여명이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난민허용에 관한 국제적인 책임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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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특정 사회 단체 참여 등의 이유로 인한 박해의 공포를 피해 조국을 떠난 후, 귀환하지 못하거나 귀환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사진 출처-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UNHCR) 서울사무소




  우리나라 난민정책의 첫 번째 문제는 난민인정 절차의 후진성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문적인 기관이나 담당 공무원이 아니라 출입국관리국의 불법 체류를 단속하는 부서에서 난민인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백 건의 사건을 1, 2명의 비전문 공무원이 담당하고 있으니 신청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난민신청인을 불법 체류자라고 보는 경향이 농후한 것입니다. 난민신청인이 법무부 심사를 받기 위해 1, 2년 이상 대기하고 있는데 이들이 적정한 심사 아래 난민으로 판정 받는 것은 사실상 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난민인정 절차에 하루빨리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난민에 대한 처우의 문제입니다. 난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체류 자격을 주는 것일 뿐 아니라, 그들이 이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난민들의 사회 정착과정에 정부는 무관심하기만 합니다. 현재 난민 보호의 내용은 대한민국에서 쫓아내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난민들은 외국인에게 더 척박한 노동현실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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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UNHCR) 서울사무소



 난민문제를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멀게는 조국 독립을 위해 만주나 미국 및 유럽 등에서 활동을 하던 선조들이 바로 난민이었습니다. 가깝게는 군사독재 시절 민주인사들이 외국 망명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되어 이국에서 조국 민주화를 위해 투쟁을 계속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서 추방되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목숨이 위태로울 게 뻔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이제는 갚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땅에 와서 외롭게 투쟁하는 망명객들과 민주화운동의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그들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도울 때가 왔다는 말입니다.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서울교구 사회사목담당 신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