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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 (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5-31 17:40
조회
410
여섯 달 전 아들이 태어났다. 서른일곱에 첫 아이를 본 것이다. 장가를 늦게 간 데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보니 출산이 늦어졌다. 1억2천만분의 1의 경쟁률을 뚫고, 아니 몇 조는 족히 넘을 ‘형’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인간의 얼굴을 하고 태어난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원래 여자를 좋아해서, 딸이길 바랐지만, 아들 딸 구별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냥 좋았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출산을 늦췄던 이런저런 이유보다 더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생후 2주도 안된 녀석이 세균감염으로 열흘 동안 병원신세를 지지 않나, 무슨 감기는 또 그렇게 달고 사는지, 기침이 끊일 날이 없다. 기관지염으로 입원한 적도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난관은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아내가 석 달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출근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직장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직업 특성상, 그것도 지금 맡고 있는 일의 특성상, 집에 일찍 들어가는 날이 하루도 없다는 것이다. 단 하루도 말이다. 주말은 주말대로 쉴 수가 없다. 기사 마감이 월요일과 화요일 오전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사람은 게을러야 창의력이 생긴다’는 내 지론과는 정반대의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칼’ 퇴근해서 아이를 찾아오는 아내-아내는 조선의 9급 공무원이다-의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밤늦게라도 젖병을 씻어대는 등 ‘면피’를 획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겨레문화센터 기자학교 학생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새벽이니 일찍인가?-들어간 날 급기야 사단이 벌어졌다. 아내는 문화센터고 뭐고 다 때려치우라며, 취해서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나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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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연합뉴스



다음 날, 나는 결심했다. ‘아이가 새벽에 깨서 울면 전적으로 내가 책임진다. 잠이 좀 모자라도 정신력으로 버티자.’ 그런데 결심은 채 이틀을 못 갔다. 아내는 화를 내서 미안했던지 “잠이 모자랄 텐데, 어서 자라”며 따뜻한 말을 해줘 내 차가운 결심을 무너뜨렸다. 이젠 아이가 여간 울어서는 알아채지도 못 하게 됐다.

우리 회사에도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육아휴직을 한 남자 기자는 단 두 명,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진적으로 남자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할 때였다. 그러나 두 사람 다 한달만에 불려나왔다.(규정상 석 달을 쉴 수 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이후 아무도 육아휴직을 신청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지난해 80여명의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몇 안 되는 인력으로 더 질 높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그야말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일하고 있다.

문제는 공무원 조직을 비롯한 ‘여유있는 직장’에서도 육아휴직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는 것이다. 승진 등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육아휴직을 감행하는 용기 있는 사람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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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한겨레



맞벌이가 생활의 기본이 되면서, 친정 엄마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됐다고 한다. 시집 간 딸이 시어머니보다는 마음편한 친정 엄마들에게 아이를 맡기기 때문이다. 손자도 가끔 봐야 귀엽지, 근력도 예전 같지 않은 노인네들이 하루 종일 한 생명을 건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편히 쉬어야할 인생의 제2막을 보모로 저당 잡힌 노인들의 처지가 안쓰럽다.

아이를 낳으면 몇 십 만원을 주겠다는 식의 발상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30년 뒤면 이 사회에 온통 할아버지 할머니만 득실거릴 거라고 협박해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잠시 쉬었다 오려다 영원히 집에서 쉬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IMF 직후의 후일담만이 아니다. 갈수록 수위를 높여가며 득세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와 정부의 출산장려 운동은 애초부터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덕분에 이제 ‘둘째’ 생각은 싹 없어졌다. “애를 위해서라도 둘은 있어야지”라고 말하던 우리 부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됐다. “몇 년 지나면 달라질 거”라는 주변의 조언이 제발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육아휴직을 하고 싶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