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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두 공무원 (이재성)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6-08 17:33
조회
444
평소에 경제면은 읽지도 않던 내가 경제부로 발령 난 것은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 10월이었다. 나라가 거덜 난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지역등권론과 수평적 정권교체를 앞세운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텔레비전 개그프로부터 시작해 밥집에 이르기까지 특정 지역의 사투리가 부쩍 많이 들리던 때였다.

경제부에 가서 처음 맡게 된 분야가 부동산이었다. 담당부처인 건설교통부도 함께 출입하게 됐다. 건설교통부 차관을 지낸 ㄱ씨는 당시 공보관이었다. 공보관 자리는 막 국장으로 승진한 사람이 맡는 관행 같은 게 있었는데, 그도 그런 케이스였다. 첫 눈에 그는 엘리트 공무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매사가 똑 부러졌고, 호방한 성격이었다. 기자들에게도 할 말을 다 하면서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특유의 화법을 구사했다. 동기 중에 가장 승진이 빠른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술만 먹으면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고, 기자들과 말싸움을 하기도 했다. 공무원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렇게 그는 당당했다.

어느 날 그가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청계산 기슭의 한 고기 집이었는데, 매우 고급스런 느낌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중년의 남자 두 명이 앉아있었다.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평소에 존경하는 분들이라고 소개했다. 명함을 받아보니 건교부 산하 기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특이했다. 산하 기관보다는 본부가 힘이 세니(당시만 해도 본부에서 산하기관 예산편성권을 쥐고 있었다) 머리를 조아리는 게 옳을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오히려 상전이라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말로만 듣던 낙하산이었던 것이다. 사람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그가 정치권에서 내려온 낙하산들을 접대하는 자리에 나를 끼워 넣은 것이었다.

그는 그 뒤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중책을 맡았다. 그는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자리에 오를 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평소의 사람 관리, 정치권과의 관계와도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아주 나중에 그는 정권의 핵심이라고 거론되는 사람들이 연루된 어떤 프로젝트의 몸통처럼 돼서 공무원을 그만 두게 됐다. 개인비리가 드러난 것이 아니었는데도 구속까지 당했다. 나는 그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보면 추진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었는데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치권의 압력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또 한명의 공무원이 있다. 바로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다. 그 역시 매사에 똑 부러지는, 소신 있고 당당한 공무원이었다. ㄱ씨처럼 기자들에게 할 말을 다 하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특유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도 공무원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와 저녁 식사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서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런 그의 발언을 그가 공무원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차관이 된 지 6개월 만에 물러났다. 그는 청와대의 인사 청탁을 거부해서 경질됐다고 주장했다. 경질 사유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은 시시각각 변해 왔다. 처음엔 신문유통원 업무를 해태한 것이 이유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부적절한 발언이 결정적인 사유라고 말을 바꿨다. 공무원이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의 협조 부탁 혹은 명령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유 전 차관은 그렇게 했고, 결국 경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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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사진 출처- 한겨레
 



 그의 해명은 이렇다. 아리랑티브이 부사장으로 청와대가 추천한 정치권 인사가 아리랑티브이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만나자고 했단다. 부사장으로 가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전화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를 만나본 아리랑티브이 사장은 “정말 깜이 아니다”라며 문화관광부가 제발 좀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유 전 차관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의 정치권 인사를 추천한 것은 그 다음이다. 유 전 차관은 이 수석에게 그 사람이 그 자리에 꼭 앉아야 하는 이유를 3가지만 말해보라고 했는데, 이 수석은 대답하지 못했고, 그래서 설득이 됐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주일도 채 안 돼 청와대에서 공직기강 조사를 나왔고, 인사 청탁 거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공직기강 조사를 나온 청와대 사람에게 “인사 청탁을 하는 게 공직기강에 어긋나는 겁니까, 그걸 거부한 게 공직기강에 어긋나는 겁니까” 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 청와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앞으로 이런 일(인사 청탁)을 그만 두지 않으면 내가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 생각엔 그런 말이 청와대에 보고 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한 것으로 와전되지 않았나 싶다. 그게 청와대가 말하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던 것 같다.

낙하산 인사들을 접대했던 ㄱ씨와 아예 낙하산 인사를 거부했던 유 전 차관을 비교한 것은 누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 시절에는 낙하산 인사라는 게 그만큼 비일비재했다. 언론에서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와도 그냥 일회성으로 지나가곤 했다. 사실 낙하산 인사의 양으로 치면 현 정권이 기존 정권들보다 훨씬 덜 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현 정권 들어 낙하산 인사가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른바 조중동의 집요한 물어뜯기가 큰 공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회성이 아니라 날마다 문제를 제기하니 그것이 여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청와대의 도덕성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구언론과의 싸움을 자처했다면 꼬투리 잡힐 일을 애초에 만들면 안 되는 것이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애를 쓰는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이 결국 레임덕을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정책을 펴려면 코드 인사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아리랑티브이 부사장이 코드 인사를 필요로 하는 중요한 자리인가? 그렇게 자잘한 인사까지 챙기다보니 보은인사니 뭐니 하는 비아냥을 듣게 되고, 총리나 장관 같은 중요한 인사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는 것이다. 현 정권의 인사 난맥상은 스스로 만들어낸 무덤인 셈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